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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절대적인 것들을 위하여- 서성자(시인)

  • 기사입력 : 2017-0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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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다 알다시피 2007년에 수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1974년부터 써 온 맹세문에 ‘조국과 민족’에 충성을 다한다는 표현이 시대에 맞지 않는 퇴행적이란 논란으로 수정된 것이다. 그 시대엔 국가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것이 애국이며 국민의 자세라 배웠고 당연하다 여겼다. 사회가 변해 애국심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정의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자세로 넓혀졌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시대에 맹세문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그 지향은 인간을 사랑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는 데 둘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 사회를 지탱해온 어떤 윤리는 사회 변화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대 가치는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 여러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는 개인이든 사회든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그 변화를 거부할 때 생긴다. 더욱이 그 주체가 위정자라면 국가 전체에 위기를 초래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맞은 대혼란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변하고 국민의 의식은 성숙했는데 그들만 40년 전에 머물러 있다. 매일 드러나는 엘리트들의 민낯은 70년대 모습 그대로다. 잘못은 환경 탓이고 목적에 따라 아랫사람을 경질하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론몰이를 한다. 지도자는 오직 나라만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는 40년 전 인식에 갇혀 있다. 자신의 애국심만 절대이며 그걸 지키기 위한 통치를 했고 다른 애국심은 무시했다. 지금도 자신만이 선이고 옳다고 떠든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 우리 사회는 힘들어서 죽는 사람이나 범죄자가 넘쳐날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가치를 그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꼭 지켜야 할 덕목으로 우리는 효를 꼽는다. 효 그 자체는 변할 수 없는 가치이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규범이다. 그런데 만약 고전이나 설화 속의 효행처럼 자식의 절대적 희생만 강요한다면 그건 현시대에 맞지 않는 윤리이며 보편적 가치라고도 할 수 없다.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형식의 효는 현대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다양해진 삶의 모습에 따라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모시는 가정이 늘어났다. 또한 직접 모시는 가정도 여러 사회제도로 도움을 받는다. 이런 변화를 두고 이것이 효다 불효다 할 수 없다. 빠르게 변한 사회에서 수직관계의 일방적 희생으로는 효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시대에 맞게 여러 방법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고 가족 구성원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여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는 곧 절대적 가치인 우리의 효 정신을 대대손손 지켜가는 모습일 것이다.

    낯선 새해를 맞았다. 사방이 온통 무겁고 딱딱하다. 소망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일상은 잘 흘러가야 한다. 이 혼란 속에서도 모두 한곳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대한민국’이라는 절대를 향해 촛불로 노래로 시로 그림으로 걸어가는 여러 모양의 마음들, 눈물겹도록 눈부시다. 바라건대 격하게 당당한 저 태극기 행렬도 끝 지점은 모두 같은 곳이기를…. 그리하여 몸과 마음 추스르고 다함께 행복한 설 맞기를.

    서성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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