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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3] 무학여고 자율동아리 ‘리멤버’

잊지 말아요 '아픈 역사' 기억해야죠

  • 기사입력 : 2017-01-3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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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청춘이라 할 만한 친구들을 만났다. 진짜 이팔청춘이다. 꽃다운 열여덟,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 지금까지 만나온, 앞으로 만날 청춘블루스 주인공 중 최연소라 할 만하다. 10대이므로, 어린 건 당연했다. 그러나 마냥 어리다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와 부산 총영사관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10대 청춘들을 만나봤다.

    모든 것은 조윤수(18·무학여고3) 학생의 ‘수다’에서 시작됐다. 윤수 양은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역사 시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룬 후 생각이 많아졌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과 행복이 박탈 당한 이야기들. 그것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이후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을 봤거든요. 충격적이었요. 어른이 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겠지만… 당장 학생 신분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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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여고 자율동아리 ‘리멤버’ 학생들과 선생님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기 위한 배지와 배지 도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조은, 이연수 학생, 허윤정 선생님, 조윤수 학생./전강용 기자/

    그게 2015년 초의 일이었다. 스스로 ‘말이 좀 많다’며 웃는 윤수 학생. 윤수 학생은 친구들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도울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농담 반 진담 반의 ‘수다’에 가까웠지만, 바깥으로 새어나간 말들은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같은 학년이었지만 각각 반은 달랐던 김조은, 이연수, 김미소 학생이 진짜 ‘뭔가’를 해보자며 힘을 보탰다.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다. 활동 목적은 ‘또래들에게 역사문제 인식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포괄적인 주제로 잡았다.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허윤정 선생님을 찾아가 자문을 하고 담당 교사가 돼 달라 부탁했다. 사실 선생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탄생조차 하지 못했을 동아리였다. 이름에는 ‘잊지 말자’는 뜻을 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무학여자고등학교 자율동아리 ‘리멤버’가 만들어졌다.



    먼저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알릴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시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눈에 잘 띄는 것, 잘 쓰이는 것, 생활 속에 수시로 끼어들어 일상과 자연스레 결합될 어떤 것. “지우개 커버, 안경 닦는 손수건 같은 것들이 후보에 올랐어요. 거기에 어떤 문구나 디자인을 넣어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자는 뜻을 담으려고 했죠. 마지막엔 배지로 낙찰됐어요.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배지를 달기가 비교적 용이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지 도안은 광고 디자이너를 꿈꾸는 조은 양이 맡았다. 단발머리 소녀가 두 눈을 감고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머리에는 앙증맞은 푸른 꽃을 달았다. 물망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다.



    하지만 당장 자금이 없었다. 배지 도안을 들고 1학년 1반부터 3학년 10반까지 전 반을 돌며 취지를 설명했다. 배지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 학생들이 돈을 내고 신청을 했다. 개당 2000원. “정말 고마웠어요. 도안만 보고 저희를 믿어 줬으니까요. 450개 정도 신청이 들어왔고, 그걸 밑천으로 제조사에 의뢰를 할 수 있었어요.” 일단 교내에 배지를 보급하는 일을 마치고 나자 마산지역 8개 고등학교에도 배지를 홍보해야겠다는 2차 목표가 생겼다. 각 학교 총학생회에 연락을 취해 의사를 타진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리멤버’의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이렇게 해서 모인 자금이 250만원. 이 돈은 창원의 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계신 위안부 피해자 김양주(93) 할머니 집수리 비용으로 쓰였다.



    판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 건 그 이후부터였다. ‘리멤버’의 활동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NC다이노스 구단 측이 배지 2000여개를 대량으로 구매해 야구팬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가졌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온라인에 의한 파급력이 컸다. 배지를 구매한 어느 여학생이 배지 사진을 한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전국적으로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사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지금까지 7000개 정도가 팔려 나갔어요.” 수백 개씩 주문이 밀려들다 보니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빈 교실과 교무실을 전전하며 조금씩 작업을 했다. 제조업체에서 배지를 택배로 받아 주문자에게 등기로 재발송하는 작업이었다. 말이 쉽지, 사실 학생 신분으로 하기 버거운 일들도 있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활동하면서 느낀 어려운 점들에 대해 물어봤다. “사실 학내에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았어요. 아직 공부해야 할 시기인데 왜 이런 데 시간을 쓰느냐… 그런 염려였어요. 판매 과정에서도 서툰 부분들이 있었어요. 입금자명과 주문자 대조가 안 돼서 일일이 전화를 했거든요. 입금자명 대신 응원글을 써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좋은 일 하십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행복하세요’ 같은 말들이요. 웃음도 나고 뜻은 감사하지만 곤혹스러워요.” 게다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지 않나. ‘리멤버’가 알려지면서 이들의 활동을 교묘하게 따라하는 동아리가 몇몇 학교에서 속속 생겨났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돕는다는 구실 아래 ‘리멤버’가 고안한 배지와 유사한 배지들이 시중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양이 다양하더라고요. 단발머리 소녀라는 기본 이미지는 똑같고요. 물망초 대신 다른 꽃을 쓰거나 화관을 씌우기도 하고 몸통을 그려 넣기도 했어요.” 이미 ‘리멤버’ 배지의 도안은 저작권 등록을 마친 상태라 법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일단 공식적인 차원에서 도안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협조를 구한 상태다.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는 저희도 동의해요. 하지만 절차적인 적법성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 활동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동아리의 몸집도 커졌다. 지금은 후배들이 들어와 총원이 8명으로 늘어났다. 어느덧 원년 멤버들은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3의 문턱에 섰다. “처음 취지로 돌아갔으면 해요. ‘리멤버’의 본래 취지는 위안부 문제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었잖아요. 독도, 동북공정 등 해결되지 못한 역사 문제를 또래들과 함께 고민하는 거였거든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이전 세대가 풀지 못한 문제는 우리의 숙제가 되겠죠. 그런 순간들을 위해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한 거 같아요. 친구들도 우리가 이 일에 열의를 보이니까 관심을 보이지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복잡하다, 잘 모르겠다, 관심없다, 이런 변명들로 회피하기 바쁘거든요. 사람들은 세대가 거듭되면 잊는 걸 당연시하는데, 잊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사실 잊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허윤정 선생님도 말을 거든다. “‘리멤버’가 추구하는 건 잠깐 들끓다가 식어버리는 문제들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좌충우돌한 면도 있었어요. 일부에서는 정치적 색깔을 덧씌워서 학생들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고요. 이에 흔들리지 않고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이 계속해서 지켜졌으면 해요.” 판매 수익이 이전보다 크게 늘면서, 수익금 활용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고민을 해나가고 있다.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하고 있어요. 정말로 잊지 않는 것, 잠깐은 잊더라도 다시 기억하고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이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해야 할 일 같아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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