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성산칼럼] 평생교육에서의 우연한 걸작- 정진혜(서양화가)

  • 기사입력 : 2017-02-02 07:00:00
  •   
  • 메인이미지

    “당신 그림 걸작이에요. 절대 하나밖에 없는 아주 멋진 작품입니다.” 이것은 내가 수업시간에 종종 쓰는 말이다. 그것은 평가기준이 있다면 최고의 점수를 준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막상 그림을 그린 당사자는 왜 자기 그림이 좋은지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그런 호평을 들을 때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잘 그리기’에만 치중해 있던 자기의 예술관에 혼선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즉 예술을 한다는 것은 절대 그렇게 좁은 세계가 아닌데 말이다.

    평생교육기관에서 15년을 넘게 그림수업을 하면서 평생학습의 취지와 예술의 본질, 지향성을 제대로 교수하고자 하는 열의는 세월이 흐를수록 진정성을 띠게 된다는 사실을 나도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 이 말은 학습자와 교육자가 같은 예술의 선상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늘 감사해하며 우리는 유기적으로 교류한다.

    처음에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잘 그린 그림’에 경도돼 오로지 잘 그리고자 손만 가지고 달려 가려 하는 태세였다. 그러다 잘 그려지지 않으면 그들은 힘들어했고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하는 무서운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들은 예술의 본질을 알려하지 않았고 미술을 기능성으로만 단순히 여겨 온 좁은 세계관 때문에 스스로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생교육미술실에선 우연한 걸작들의 탄생이 많아지고 있다. 커다란 기쁨이다. 이쯤에서 마이클 키멜만의 <우연한 걸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소위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해줬던 ‘밥 로스’ 얘기가 나온다. 밥 로스는 한때 TV를 통해 아주 쉽게 풍경화를 그려내는 방법을 보여주며 그림그리기의 기초를 익히는 데 큰 흥미를 준 사람이다. 그렇다면 소위 예술적 가치도 별로 없는 듯한 그림을 그린 밥 로스가 어떻게 <우연한 걸작>에 등재되는 인물이 됐을까 하는 것은 이 책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여기서 밥 로스를 지목하는 것은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그리기’의 행위로 쉽게 우리에게 와닿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술이든 사진이든 경우에 따라서는 각자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예술성이 깃드는 것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고 그것이 가치로움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늦은 나이에도 그림을 그린다든가 무엇을 배우고자 한다는 것은 젊은 날 이루지 못한 자기만의 세계를 다시 찾고 싶은 열망이 남아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스스로 감옥을 만들지 마세요. 당신이 미처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미적 감각의 세계가 분명 있을 거예요. 그것이 발현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내 강의의 첫 멘트이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탐험을 하면 할수록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넓어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들을 보게 만드는 예술가들이 때론 우울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쩜 섬세하고 예리한 눈빛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진정한 예술가의 우울한 모습마저도 우리에게 위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잃어버린 모든 것은 신기해하던 유아적인 성향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가끔씩 예술이 그 위로 빛을 비추어 주어야 우린 그동안 상실한 것들을 떠올린다’고 우연한 걸작에서도 말하고 있다.

    걸작의 핵심은 아마추어의 진정성, 즉 어떤 대상(그것이 무엇이든)을 사랑하며 나와 마주하는 열정을 쏟아붓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염두에 두고 가까이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기도 하며,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조차 걸작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평생교육기관이라는 배움의 장에서 더 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맛보며 걸작 탄생(우연이든 필연이든)의 기쁨은 지금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정진혜 (서양화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