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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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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잘못 인쇄된 걸 읽었다가 죽을 수도 있다- 서연우(시인)

  • 기사입력 : 2017-02-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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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죽어도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어떤 힘도 기억을 제거할 수는 없다. 책은 무기이다.”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전언이다.

    책을 숭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꼬맹이, 세계의 퍼스트레이디 전집이 어떻게 집에 있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미국의 영화배우 출신으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에 푹 빠져 있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건강도서는 무척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잘못 인쇄된 걸 읽었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책이라는 인쇄 매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통해서 많은 정보와 지식, 지혜를 얻었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형성의 기틀이 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인쇄되어 나온 모든 문자는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책의 내용은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책이 틀렸다고, 아니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은 기연미연, 사람은 긴가민가했어도, 책은 믿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논란이 일고 있다. UN 역사교육 분야 특별보고서는 “역사 교육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단일 역사 교과서는 정치적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채택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는 “역사는 단일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역사학자들은 세대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므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대화를 시도해 새 역사를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적 편향성에 치우쳐 수시로 바뀌는 역사를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오류가 없어야 하며, 물과 같이 흐르고 공기와 같이 소통돼야 이상적인 것이 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역사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영화 ‘더 킹’에는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검사들이 등장한다. 실존인물의 이름이나 사건에 대한 역사적 순간을 담아낸 TV 자료화면이 등장한다. 어느 것이 영화인지 어느 것이 정치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역사 강의하듯 풀어낸다. 우리 사회에는 TV나 영화, 인터넷에 나오는 내용을 검증도 하지 않고 사실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정보매체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이다. 하물며 국정교과서의 중요성과 영향력이야말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뿐만 아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같이 일어나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일들이 정상인 것처럼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공자는 일찍이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안다”고 했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를 물려주려면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한파 몰아치는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분노하되 좌절하지는 말고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내일이라는 유리창을 닦아나가야 한다.

    서연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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