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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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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 (27) 김용택/그동안

  • 기사입력 : 2017-02-03 15: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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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지금까지 많은 잘못과 과오를 저질러 왔는데,
    아마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반성하거나 조심하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내게 닥쳐올 미래는
    자비로운 면보단 무자비한 측면이 조금더 많을지도 모르고
    솜사탕인 줄 알고 베어먹어보면 깨진 유리조각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가슴을 치며 울기도 하겠지.
    우는 건 분명 슬픈 행위이지만
    그러나 따지고보면 딱히 애달프고 측은할 것도 없지 않은가.
    다들 혼자 울 때 있지 않은가.
    그냥 그런 것이다.

    한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싸잡아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겉으로 그랬기 보다는 속으로 말이다.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고 그들의 공(功)을 빛나는 해처럼 치켜세워 주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 닿는 만큼 실컷 그들을 깔보고 업신여겼었다.

    멍청하게도
    그것이 내 자존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조경란의 소설 '2007, 여름의 환(幻)'에는 여름만 되면
    혼이 나가버려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나는 혼자서 '2017, 겨울의 환(幻)' 대본을 써서 겨우내 열연하는 중이다.

    메인이미지


    겨울마다 거절당하고 거부당하는 기분에 휩싸인다.
    또 실제로 겨울마다 내가 자식처럼 품어왔던 가치들이
    어떤 이에 의해, 집단에 의해, 잣대에 의해
    보기 좋게 퇴짜를 맞거나 혹평을 달고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돌아왔다.
    상처라면 상처일 것이고, 그래서 심하게 앓게 된다.
    좋은 코트를 사 입으면 뭐하나, 털 달린 부츠를 신으면 뭐하나.
    쏜 사람도 없는 화살을 내가 맞고 내가 뽑았다.
    이번 겨울도 어김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계절은 무차별적으로 흐른다.
    강물처럼 이편에서 저편으로 흐르는 것만은 공정해서,
    나는 또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번 겨울이 여느 해와 사뭇 달랐던 것이 있다면
    거부와 거절을 통해 내가 무시해왔던 사람들의 입장이 한 번 되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을 길가의 풀 한 포기보다 못하게 취급해왔던 내 진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는 것이다.
    그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건, 솔직히 너무 쓰라린 거였다.

    공교롭게 그 즈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유럽여행을 다녀보니 미술관이 많더라.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은 잠깐이었다. 그림 중에서는 화가 당대에 인기를 끌고 칭송 받았던 그림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소외 속에서 탄생한 그림도 있었다. 힘겹게 살았을 것이 분명한 그 화가가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울분에 휩싸여 그리기를 멈췄다면, 그 그림들은 애초에 잉태조차 되지 않았겠지. 예술의 힘은 좋은 그림을 남겼다는 사실보다 무관심 속에서도 계속해 나가는 것에 있다는 거. 그 깨달음에 탄성이 나왔다."

    따라서
    내가 여기서 궁극적으로 하고픈 말은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 계속해보겠다는 것이다.

    ......네. 계속해보겠습니다.

    입춘(入春)을 앞두고 겨울에 고하는 내 뼈아픈 희망사항이다.

    메인이미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살았다.
    글을 썼다.
    쓴 글 모아보았다.
    꼬막 껍데기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회한이 어찌 없었겠는가.
    힘들 때는 혼자 울면서 말했다.
    울기 싫다고. 그렇다고
    궂은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살았다.'


    '그동안' - 창작과비평사/김용택/'울고 들어온 너에게' 18페이지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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