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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질 것을 두려워하자-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7-02-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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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 마주할 때 감정이 더욱 복잡하다. 산 사람이야 대화를 하든 눈빛을 나누든 교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수두록하다. 하지만 고인(故人)과의 대화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 설날에 아버님을 모셔둔 납골당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납골당처럼 갑갑한 공간은 없다. 좁은 통로, 높다란 칸칸이 선반에 놓인 유골함. 좁은 공간의 빈틈에 쑤셔 넣은 듯한 향기 없는 꽃, 술병, 사진 등등. 간단한 목례로 자리를 떠야 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기다리는 다른 추모객에 자리를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고인과의 추억은 돌아오는 차 속에서나 떠올려야 했다.

    아버님이 고인이 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이후 고인과 관련된 많은 기억들을 새롭게 이해하고 또 재해석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전의 평가나 해석이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이다.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고인에 대한 재해석에는 늘 평가가 뒤따른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가 왜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답할 것은 없지만, 추억 떠올리기에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필자가 하는 평가가 고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그다지 폼나지도 않고, 그로 인해 빛나는(?) 유산을 남기지도 않았지만 자식이자 산 자로서 어설프게나마 고인의 생(生)을 이해하고, 또 규정 짓기 위함이다. 고인을 떠올리는 감정이 복잡한 이유다.

    납골당이나 공원묘원에 자리한 수많은 고인들을 보며, 저들은 산 자들로부터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쓸쓸하고 황량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죽은 자들에게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죽은 자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내내 생을 이어간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인간이 태어나 치열하게,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주하는 것도, 당장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떠난 이후의 평가를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 27명의 임금 중 왕이 아닌 군(君)으로 남겨진 이는 연산군과 광해군 2명이다. 이들 모두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는데,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물러나면서 군으로 내려앉았다. 단종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군(君)에서 서인(庶人)으로까지 강등됐지만, 죽은 지 241년 만인 숙종 24년(1698년)에 왕위를 되찾아 당당히 ‘조선의 왕’으로 남았다. 반면 연산과 광해는 복권(復權)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영원히 ‘미완의 왕’으로 남겨질 운명이 됐다.

    고대 왕들의 공과(功過)는 무덤에 남는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왕릉(王陵)에 관한 얘기 중, 연산과 광해는 죽어서조차 왕릉의 격을 갖추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산 자와 소통하는, 죽은 자의 공간인 무덤은 단순한 흙더미가 아니라 그 주인의 일생을 담고 있는 곳이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의 인생과 가치를 논하고 평가할 줄 알았다면, 또 그것을 두려워했다면 삶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혼란은 역사와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몰염치의 소산일지도 모르겠다. 높이 오르는 것보다,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질 것을 두려워하는 위인들이 많기를 바란다.

    이문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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