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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23) 산청 (12) 시천면 중산리 ~ 지리산 법계사

수난 깃든 절터, 봄이 반겨주네

  • 기사입력 : 2017-0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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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집인 법계사. 옛 문헌에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고 해서 왜적이 여러 차례 불을 질렀다.


    대지에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났다. 그래도 바람은 차갑다. 춥기는 나라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도 국내외적으로 입춘 추위보다 더 큰 어려움에 노출돼 있는 것 같다. 이래저래 백성들의 삶은 녹녹하지 않다. 새벽잠이 없어 부질없는 걱정들을 뒤로하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면서 오래된 작은 책 한 권을 챙겼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전우익 선생이 지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이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진솔한 세상 사는 이야기이다. 그는 “인간과 동물은 소비만 하고, 식물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또 “밭에서 잡초와 독초가 자라듯 세상이란 밭을 갈지 않고 비워두니 어중이떠중이, 깡패, 건달들이 끼어들어 나라를 흥정하고, 백성을 볶아 먹을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한절골 오두막 마당에도 푸성귀를 심어 먹는 작은 텃밭이 있다. 겨울 동안 밭을 비워두니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잡초들이 애지중지 뿌려 둔 거름을 염치없이 빨아먹고 있었다. 씨앗을 파종하려면 텃밭을 갈아엎어야겠다.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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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 순직 위령비

    지리산중산리·지리산위령비

    가족들은 추운 겨울 지리산을 왜 가느냐고 묻는다. 지리산이 부른다고 답하는 것이 우문현답이다. 겨울은 낮의 길이가 짧으니 천왕봉까지는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집 법계사까지 오를 예정이다. 한산하고 탁 트인 고속도로를 따라 남강을 건너 물안개 자욱한 덕천강을 거슬러 가면 이내 시천면 중산리이다.

    중산리는 지리산 천왕봉의 출입문으로 국도 20번의 종점이다. 예전에 시외버스를 타고 내렸던 종점에는 중산산악관광센터가 생겼고, 지리산휴게소도 있었다. 시외버스나 관광버스를 타고 오면 한참을 더 걸어야 지리산탐방안내소이다. 승용차는 근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유료주차장에 세워두면 된다.

    지리산의 관문 중산리에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과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요즘은 복잡한 도시생활을 떠나 아름다운 전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고려시대 말엽에는 왜구가 중산리까지 밀려들었다. 무신년(1908년)에는 의병장 박동의·이춘례가 왜병에게 항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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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종각

    지리산탐방안내소 앞에서 법계사 신도들을 위해 운영하는 중형버스를 타고 법계사로 가는 생태탐방로 입구에서 내렸다. 겨울철이라 버스도 산길도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무료로 버스를 태워 준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내렸다. 지리산 근처만 와도 괜스레 소년처럼 마음이 설렌다. 길을 지키고 있는 이정표에는 중산리 3.6km, 법계사 2.4km, 천왕봉 4.4km이다. 자연석에 위령비라고 새긴 비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1996년 8월 9일 오후 4시 15분께 지리산에서 조난당한 등산객을 구조하고 가던 경남소방 항공구조구급대 소속 소방헬기가 추락해서 소방관을 비롯해 7명이 순직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문을 옮긴다. ‘여기 제 몸보다 남의 안전을 귀하게 여기다 숨져간 소방항공 대원들과 구조 도중 목숨을 잃은 젊은이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잠들고도 사람들 가슴속에 영원히 쉬지 않는 봉사와 희생의 꽃으로 피어나리니 님들이여 이승의 일 다 접고 편히 쉬소서.’

    등산로 입구 나무 아치형 문에 ‘생태탐방로’라는 표지판이 있다. 생물의 생활 상태를 탐방하는 길이다. 지리산의 생태 공부를 좀 하고 오라는 것으로 보인다. 안전한 산행을 위한 현수막이 몇 개 붙어 있었다. 위령비에 묵념을 하고 나오며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안전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사계절 내내 녹색의 진한 자태를 하고 있는 산죽 사이를 지나면 작은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이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스쳐 지나는 물소리가 상쾌했다. 산행처럼 우리의 인생도 늘 평탄한 것은 아니다. 인생도 산행처럼 다양해서 극복해 나가는 즐거움도 있다. 산행은 시간과 인내와의 싸움이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땀 흘려 얻어진 가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 행복하다.

    작은 계곡을 건너고 길게 이어진 돌계단을 반복해서 오르다 보니 앞서갔던 사람들을 만났다. 나보고 설렁설렁 걷는 걸음이라며 커피 한잔을 건넨다. 대구에서 왔다는 김진규(53)씨 일행이다. 빵까지 덤으로 받았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 본다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만났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는 인사도 쉽게 나누고 커피 한잔도 나누는 마음의 여유도 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않고 항상 너그러움을 주는 자연의 힘이다.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오르다 보니 지리산 로타리대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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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타리 대피소

    로타리대피소·지리산법계사

    로타리대피소(해발 1335m)의 위치는 중산리에서 칼바위 방향으로 약 3.3㎞, 경남환경교육원 입구에서 약 2.4㎞이다. 천왕봉에서 2㎞이다. 등산객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담한 대피소 건너편에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 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타리대피소는 1978년 10월 국제로타리 제366지구 주관으로 건설해서 산악인 조재영씨가 관리했다. 그동안 많은 탐방객의 안전예방과 구조 활동을 했다. 국제로타리 제366지구에서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로타리대피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2000년 7월 20일 환경부에 기증했다. 대피소의 수용 인원은 약 40명으로 침구류를 포함해서 이용료(성수기)는 1만원이다.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옛 추억을 더듬어 보려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새우잠을 자던 잠자리와 담요를 보니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남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겨울에는 식수가 얼어 법계사의 신세를 진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인근 법계사 일주문으로 향했다. 단체 탐방객들이 깃발을 달고 대피소를 벗어난 곳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삼가야 할 만용이다. 법계사 일주문에서 천왕봉까지는 약 2km이다. 법계사가 있는 위치는 천왕봉 동남향 해발 14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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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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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멸보궁

    일주문에서 돌계단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출입금지 표지판이 달린 요사채와 공양간 건물이 있다. 종무소 앞에는 어디선가 뽑았다는 포탄 같은 쇠말뚝이 있었다. 왼쪽에 적멸보궁과 범종각이 있다. 중앙으로 오르면 사철 변함없는 샘과 삼층석탑, 극락전, 산신각이 있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처음 세웠다. 조사가 절을 짓기 위해 전국을 두루 다녀보고 나서 이곳이 경치가 좋아 절을 지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모양의 산세가 좌우로 급하게 이어져 오직 동남쪽만 멀리 트여 길지이다.

    춘분과 추분에 무병장수의 별 남극의 노인성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옛 문헌에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고 해서 왜적이 여러 차례 불을 질렀다. 고려말(우왕 6년, 1380)에는 왜군 아지발도가 절집에 불을 질렀다가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었다. 그 후 절집이 폐허가 된 것을 약 80년 전 절을 다시 짓고 벽계사라 했다. 1908년 의병장 박동의가 벽계사에 본부를 두고 왜적에 항거하다 패하고 다시 불탔다. 그 후 초가로 남아 있었는데 6·25전쟁 때 다시 불탔다. 1981년 중건돼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법계사가 수난을 당하면서 절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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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연석 바위를 기단으로 법계사삼층석탑(보물 제473호)이 서 있다. 이 삼층석탑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해서 불상이 없는 적멸보궁이 아래쪽에 있다. 탑신부는 1개의 돌과 지붕돌을 포개어 쌓았다. 1층 몸돌은 길지만 2층과 3층 몸돌은 약간 짧다. 추녀는 지붕돌의 처마와 처마가 마주치는 부분에서 약간 휘어졌다. 법계사를 가장 보배롭게 하는 것은 사철 끓어지지 않는 맑은 샘물과 삼층석탑이다. 지척에 있는 천왕봉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두고 칼바위 방향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마산대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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