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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신형철(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7-0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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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제도를 다루는 문헌에 자주 나오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개념은 라틴어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에서 온 것인데 ‘자유로운 예술’이 아니라 ‘자유인을 위한 과목’을 뜻한다. 간단히 자유과(自由科)라고 옮길 수 있겠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상류층 엘리트)만 배울 수 있는 학문을, 계몽주의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비판적 지성인)이 되려면 배워야 할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흔히 ‘전공 교육’과 반대되는 ‘교양 교육’을 뜻해, 특수한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교양인을 기르겠다는 취지의 대학을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 한다.

    대학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필수 교양 과목이 있다는 발상 자체를 새삼 음미해 보려고 꺼낸 말이다. 고대 이래의 ‘자유과’(더 정확히는 ‘자유7과’)는 문법, 수사(修辭), 논리, 산술, 지리, 천문, 음악으로 구성됐다. 이 과목 구성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그러지 않는다. 각 시대 모두 나름의 사상과 필요에 따라 교육의 실제 내용을 달리해 왔다. 우리 시대의 조건이 반영된 자유과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야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헌법이다. 고등학교 때 헌법의 기능과 개정 역사 등을 배웠을 테지만 조문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곱씹은 기억은 없다. ‘헌(憲)’은 ‘법’이나 ‘관청’을 뜻하는 글자인데, 글자를 분해해 보면 ‘해로운[害] 일이 없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감시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전하는 자전의 풀이가 과연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법의 세부 내용은커녕 헌법이라는 글자 자체의 뜻도 모르고 살아왔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1조 1항과 2항 정도는 외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과 그 뒤를 잇는 ‘국민주권론’의 선언이 얼마나 엄중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나의 공부는 여전히 부족해서 ‘헌법 사용 설명서’(조유진, 이학사)를 읽었고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로마가 마지막 왕을 축출한 이후 스스로를 ‘공화국(republic)’이라 했는데 이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공화국이란 일차적으로 ‘왕이 없는 나라’를 뜻한다. ‘평등한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적 가치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되는’이라는 뜻의 ‘공화(共和)’가 그로부터 파생·심화됐다. ‘국민주권론’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할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에서 ‘권력’이라는 말은 ‘권리’ ‘권한’ 등과는 달리 법률용어가 아니라는 것, 이 “의지와 감정이 담긴 대단히 정치적인 말”이 우리나라 최고 법규범인 헌법에 쓰였다는 것은 “헌법이 고도로 정치적인 문서”임을 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처럼 헌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법만이 아니라 정치도 함께 공부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고 실제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최소 중고등 교육에서부터) 필수적으로 헌법을 공부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출발해 여타의 법과 동시대의 정당 정치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등학생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을 방치하면서 왜 그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지는 않는가.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그것을 숨기려 한다. 진정한 ‘자유과’는 따로 있다는 것을.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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