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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말은 해야 맛이라지만…- 서영훈(부국장 대우·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2-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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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고 했던가.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다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말이 독백이 아니라면,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하는 말도 그러하지만, 특히 대중을 앞에 두고 말을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말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가 특별하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하는 말과 저기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다른 게 정치인 고유의 화법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들의 말은 사실 여부에 대한 검증을 받기도 전에 대중의 환호에 묻혀 버린다.

    도지사를 연거푸 지내고 지금은 어느 당 비상대책위원이면서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K씨. 얼마 전, 어느 시사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인터뷰 내용은 탄핵정국에 대한 것으로 채워졌는데,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리스트라면 나도 만들었다. 도지사 시절 보니 행정의 기본이 리스트 작성이다”라면서 “교도소 행정의 핵심은 초범, 재범, 공안사범, 잡범으로 나누는 분류 심사이고, 소방 행정도 역시 취약시설, 양호시설 등으로 건물을 분류한다”고 했다. “금융도 그렇지 않나”라면서 리스트 작성 당위성의 근거를 보강했다.

    그의 말대로 리스트 작성은 주요한 행정행위의 하나다. 도청 재난안전본부가 지역 내 모든 시설을 리스트화해 관리한 것은 당연하다. 법무부가 재소자를 누범 정도 및 위반 법령 등에 따라 분류하고 관리하는 것 또한 상식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 말부터다. 그는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분류해 놓은 것 자체를 범죄라고 하는 것은 행정부 문 닫으라는 얘기”라고 했다. 소방과 교도행정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범죄 재발률을 줄이기 위해 리스트를 만드는 것과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리스트를 만드는 것 사이에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또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을 왜 따로 분류해 놓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는 이어서 “문체부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가서 피해를 봤다는 게 결국 ‘지원의 차등’ 아닌가. 지원할 때 차등을 주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정부가 문화예술단체나 체육단체나 기업이나 지원금을 줄 때 차등을 둘 수 있다. 그런데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법률과 그 하위의 시행령은 물론, 그 어떤 규정에도 의거하지 않고 오로지 자의적으로 만든 블랙리스트에 따라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과 단체에 대해 지원을 중단하거나 삭감하기 위한 것 아닌가. “공산주의 국가도 분류를 하지 않나”라고 그는 말했는데, 문화예술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그런 나라 말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 그런 사례를 드는 게 맞다.

    이래 놓고 “물론 분류해 놓고 불이익을 주는 건 다른 얘기다. 지사 시절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리스트를 만들고 그에 따라 지원에 차등을 두는 것이 떳떳하다면, 이 말을 굳이 왜 하는가. 블랙리스트에 관련해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선 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다.

    서영훈 (부국장대우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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