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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보’들의 서가-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7-02-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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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나는 비교적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인간에 속한다. 고등학생 시절에 산 책이 지금도 여러 권 있고, 대학 시절에 산 책은 수백 권, 아니 얼추 1000권은 아직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의 책등을 보기만 해도 내가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시기의 추억이 잇따라 되살아 난다. 그 무렵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고뇌했으며 또 무엇을 기뻐했던가. 책과 함께 그런 추억들이 되살아온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머리에 실린 한 구절로 나로서는 절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책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별것 없는 시시껄렁한 책 한 권 없애는 일도 참 힘들어합니다. 어쩌다 큰맘먹고 책을 버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얼마 후에 반드시 그 책이 필요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문학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서가에도 아직까지 고등학생 때 봤던 ‘독서생활’,‘뿌리깊은나무’ 따위의 잡지가 온전히 남아 있고, 당시 잘 팔렸던 ‘삼성문화문고’와 ‘삼중당문고’의 문고판 책도 수두룩이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어떤 책에는 분명 그 나이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내용에 밑줄을 긋거나 토를 달아둔 것을 보면서 희미한 개인적 감상이 묻어 나길래 지저분하고 너덜거리는 상태의 책일지라도 더욱 버릴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다치바나 씨의 말처럼 책 자체가 ‘우리 젊어 기쁜 날’의 추억을 잇따라 되살려내는 촉매임에 틀림없으니, 언감생심 책이란 버릴 수 있는 물건이란 생각조차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책을 귀하게 여기던 당시의 사회적 습속도 한몫을 했겠지요. 그러다보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권 두권 늘어난 책에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생활공간을 내주면서 옹색하게 살아온 ‘책바보’의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란 사람은 내겐 부럽기만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일본의 저널리스트로서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이란 논픽션을 발표해 당시 수상의 비자금 조성과 뿌리깊은 정경유착을 폭로함으로써 다나카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로 인해 다치바나 씨는 일약 스타급 저널리스트로 알려지면서 경제적 안정도 얻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에 관련된 주제 외에 우주와 뇌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 깊이 있는 학식으로 일본 사회에서 ‘지(知)의 거인’으로 평가받으면서 100여 종의 저작물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지적 편력이야 내게는 놀라운 일일 뿐 부러운 일은 아닙니다. 정작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가 고양이 빌딩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독서광이자 애서가이기도 한 그도 늘어가기만 하는 책의 수용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20년 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책과 함께 살기 위해서 땅값 비싼 도쿄에서 고양이 빌딩을 짓습니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가늘고 길쭉한 삼각형 모양인데 빌딩 측면에 고양이 얼굴을 그려 넣어서 고양이 빌딩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합니다. 건물 전체가 서가로 이뤄져 있는 고양이 빌딩에는 약 20만 권의 책이 소장돼 있고 관광명소로도 알려졌답니다.

    그의 서재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책들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인쇄된 책등을 보이면서 매끈하게 꽂혀 있거나 예쁜 디자인의 책표지가 노출돼 있습니다. 이렇게 서가의 책들이 배치돼 있어야 언제든 필요할 때 손쉽게 꺼내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내세울 만한 수량도 되지 않는 내 책들은 서가마다 이중으로 꽂혀 있거나 아예 구석자리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있으니 어찌 책들의 넉넉한 여유공간이 부럽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책은 구시대의 산물이 돼버렸고, 책의 죽음이 선고됐다고는 하나 책의 세계에 미쳐 사는 서치(書癡)들이 아직 남아있는 한 책은 살아 있는 정신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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