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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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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나를 성장시킨 아이들 - 박진희 (김해 봉명중학교 교감)

  • 기사입력 : 2017-02-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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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 년 전 첫 발령통지서를 받고 나보다 더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좋은 선생님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도장을 선물해 주셨다. 지금도 그 도장을 보면 그때 눈물을 글썽이면서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나의 손을 꼭 잡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당부처럼 난 과연 좋은 선생님이 됐을까?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첫 발령지의 농업계열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만 다니다 바로 발령받아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회생활에서의 첫 선생님들이었다. 너무 가난해 비닐하우스가 집인 진수(가명),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마저 어머니를 찾으러 나간 후 조부모와 생활했던 영우(가명), 물감 살 돈이 없어 옆집 아이한테 사용하지 않는 검은색 물감을 빌려 환경정리에 쓸 그림을 근사하게 그려온 반장 등. 하지만 다들 누구보다 밝은 모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곧 졸업하고 정식으로 취업하여 어머니, 조부모님을 모시고 자신의 꿈도 이룰 거라고 당당하고 씩씩했던 녀석들.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그들 앞에 섰지만 밖에서는 그들에게 더 많이 배워야 하는 학생이었다.

    첫 발령지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알게 했고,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 곳이다. 초보 선생님을 조금은 어른으로 만들어 준 그들이 한없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지금도 학교에 있으면 상황이 좋지 않아 자기 자신도 힘들면서 다른 이까지 걱정하는 학생들을 발견한다. 아이들을 겉만 보면 멋만 부리고, 버릇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른 못지않게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녀석들이 있다.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아이들은 배우고 익히면서 자신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인 우리도 함께 성장시킨다. 그들과 함께 끊임없이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내일은 내가 조금은 더 성장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박진희 (김해 봉명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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