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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행복할 수 있을까- 서성자(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7-02-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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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뜨면 뉴스부터 검색하는 아침.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형편껏 만들어온 일상이 말 같지도 않게 흔들리는 하루하루다. 개인의 의지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일들로 미래가 어지럽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편하게 흐르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시국에 너무 한가하다고? 어쩔 수 없다, 내가 행복해야 그 기운이 주변으로 퍼질 테니까. 티비를 끄고 경직을 풀고 밋밋하여 시시한 생각을 불러내본다.

    미국의 한 사회학자에 따르면 격식과 서열이 없는 곳을 ‘제3의 공간’이라 한다는데 그곳에 많이 있을수록 행복하단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직장이나 집 같은 곳이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 쉽게 피할 수 없는 공간이라면 3의 공간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말 그대로 어떤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관계일 경우도 있겠다. 세대에 따라 그 공간은 다양할 테지만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나이가 되면 모든 게 단순한 게 좋다.

    몇 해 전 땅 가까이로 내려와 살면서 꽃과 나무를 쉽게 보고 만져도 본다. 계절 따라 계산 없이 푸르고 붉었다가 사위어가는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건 새로 얻은 행복이다. 초여름 아침 주변 개천에서 개구리들이 불빛을 따라 오다 자동차에 깔린 걸 볼 때도 있다. 그럴 땐 온몸이 으스스해진다. 그런데 어느샌가 새 떼들이 와서 그 축축함을 흔적도 없이 싹 치우는 것이다. 무슨 말을 덧붙일까, 처음과 끝이 함께 저렇게 깨끗하고 단순한데. 괜히 혼자 심각했던 건 아닌가 하고 나도 모르게 가벼워진다. 뭇 생명의 그런저런 사정을 슬며시 보는 일은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또 오묘한 곳은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어린이집과 요양원이다. 햇볕 좋은 날 한쪽에선 아이들이 병아리처럼 종종거리고, 맞은편엔 구급차가 소리 없이 와서 별로 서두르지 않고 들것을 옮긴다. 창가에서 멍하게 그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편안해진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흘러가는 일상,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은 한몸이라는 생각으로 좀 여유로워진다고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혼탁한 세상 탓이겠지만 놓친 뭔가를 잡은 괜찮은 느낌이다. 주변의 사소한 공간, 이런 풍경에 마음을 잠시 놓아보는 건 어떤가.

    관계를 맺다 보면 행복하려고 선택한 만남도 가끔 무거워질 때가 있다. 혼자만의 느낌일 수도 있고 구성원 서로 갖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불편함은 욕심에서 비롯할 때가 많다. 몸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상대보다 먼저 도달하고 싶은 어떤 미래를 원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지나 열정이란 밝은 단어로 포장하지만 스스로 어두워짐을 알고 자책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선택한 ‘공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방법을 찾는 게 좋다. 그 방향으로 마음을 끌고 가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해진다. 그럴 땐 그들과 나의 마지막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떤가. 만남과 헤어짐은 한뿌리이므로 설렘과 여운의 크기는 같을 것이다. 진정 그 공간에서 나는 행복한가? 상대를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 마음부터 알아야 한다. 설령 그 끝이 일찍 온다 해도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으로 된다.

    복잡한 세상에서 행복의 욕구는 단순하고 구체화할수록 만족감이 크단다. 조그만 것이라도 꽉 잡고 행복해지자. 내게 필요한 ‘제3의 공간’은 어디인가. 나는 지금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서성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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