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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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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24) 산청 (13) 시천면 지리산 법계사 코스 ~ 우천 허만수 추모비

겨울이 여유 부리는 사이, 봄이 이만치 왔구나

  • 기사입력 : 2017-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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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법계사 코스의 하산길. 내려가는 길목엔 경계병이 망을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의 ‘망바위’와 어떤 장수가 칼을 던져 꽂혔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는 ‘칼바위’를 만날 수 있다.


    완연한 봄날이다. 지리산 하산길에도 봄 기운이 가득하다. 겨울 내내 여유를 부렸던 지리산 로타리대피소에도 등산객들이 모여 행복한 망중한을 만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취사 지정 장소를 벗어나 취사금지 표지가 있는데도 버젓이 버너를 켜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지리산은 물론이고 자연은 어느 하나도 개인의 것이 없다. 잠시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만 있을 뿐 소유나 훼손할 권리는 없다. 지리산을 비롯한 세상의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공유재산이다. 자연을 잘 보전하고 가꾸어 물려주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질서가 병행되어야 한다. 질서는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의 선이다. 질서는 함께 지키면 편리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기초교육이다. 교육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는 부모이다. 이 세상 부모보다 더 훌륭한 교육자는 없다. 가정교육이 돼야 학교 교육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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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바위

    법계사 코스·망바위

    지리산으로 오를 때는 법계사에서 운영하는 신도용 소형버스를 타고 경남자연학습원 입구에서 내려 순두류코스로 산행을 했다. 불자 신도증이 없는 등산객은 4㎞를 타고 가는데 2000원의 교통비를 내지만, 고마운 일이다. 법계사에서 하산하는 길은 망바위~칼바위를 거치는 법계사 코스로 택했다.

    이정표에 로타리대피소에서 중산리 탐방 안내소까지는 3.3㎞이고 중산리 마을까지는 300m쯤 더 내려가야 한다.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만나는 이정표가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정확도가 높아졌지만 옛날에는 거리 표시가 각각 다른 경우가 자주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등산객은 가장 거리가 짧은 법계사 코스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젊은 객기가 있던 시절에는 쉬지 않고 중산리에서 로타리대피소까지 오르내리던 추억이 흔적 없이 남아있었다.

    산행은 계절과 기상상태, 체력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눈에 익은 길이라도 늘 주의해야 한다. 산에 오르는 것이 정상을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정상에 서면 성취감보다는 하산해야 한다는 진리가 더 컸다. 자연은 인간처럼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가장 민주적이다. 누구나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똑같이 힘들고 땀을 흘려야 하고 준비를 잘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연을 대하는 데 있어 겸손함이 없다면 귀중한 목숨을 요구한다.

    결국 산에 오르는 것은 시간과 인내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이다. 고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과 산을 자주 올랐던 추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찾아오는 제자들은 산에 갔던 추억이 학교 공부보다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산을 오르며 함께 땀 흘리다 보면 올곧은 교육은 그냥 되었다.

    법계사 대피소를 벗어나면 약간 오르막길이다. 인근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자주 찾아와 쉬었던 곳이라 전하는 문창대라고 하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문창대에 ‘고운 최선생 장리지소’라는 글이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그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뒀던 곳이다. 문창대는 찾지 못했고 지척에 보이는 천왕봉을 뒤로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내려섰다. 등산로는 계단과 안전시설이 잘 돼 있었다. 군데군데 쉼터도 있었다. 진주에서 왔다는 고등학생들이 체력 단련을 한다며 지나가고 나니 지리산 하산길은 고요 속에 바람이 지나갔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능선에 꽤나 거대한 바위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지리산 해발 1177m에 있는 망바위이다. 마치 경계병이 망을 보고 있는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바위에 올라 사방의 풍광을 누리는 느낌도 독특하다.

    그런데 누군가 망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만용을 부려놓았다. 돌계단을 내려서기를 반복하며 걷다 보면 장터목산장과 중산리로 갈리는 세 갈래 지점이다. 법계사에서 2.1㎞, 장터목대피소에서 4㎞이고 중산리까지는 1.3㎞ 남아있다. 무인구급함에는 자물쇠가 잠겨있고 응급할 때 연락을 달라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사용 후에는 반납을 해달라는 안내도 함께 적혀 있었다. 구급함에 자물쇠가 잠기고 사용 후에 반납을 요청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배낭에 들어 있는 구급약을 넣어놓고 오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탐방안내소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서니 지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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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
    여기서부터는 오른쪽 중산리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하산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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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바위

    칼바위·우천 허만수 추모비

    지리산 법계사 코스에서 터줏대감은 단연 칼바위이다. 칼바위는 3.5㎞ 떨어진 홈바위에서 어떤 장수가 칼을 던져 꽂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고, 풍수설에 따라 지리산에 천왕이 있는데 장군이 칼을 들고 천왕을 호위하고 있어, 군졸들도 그 영을 따라야 하므로 여기에 칼을 세운 것이라고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한 술 더 떠서 주위의 수목들이 군졸처럼 나열해 칼의 위력을 돋우고 천왕을 옹위하고 있다고도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웃음이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이지만 산행으로 지친 나그네에게 잠시 쉬어가며 피로를 풀어주는 곳이라 여기고 싶다. 그렇게 유유자적 중산리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흰 속살을 드러낸 바위 사이로 웅장한 물소리가 상쾌함으로 들려온다. 이런 행복함 때문에 배낭을 꾸리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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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영캠핑장

    조금 더 내려오면 법계사 코스 입구를 알리는 반원형 아치문이 있고, 법계교 인근에 지리산 중산리 야영캠핑장이 있다. 겨울철에는 캠핑장도 문을 닫는다. 법계사 코스 초입 자연석 위에 전설 같은 산사람 우천 허만수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지난번 지리산에 취해 추모비를 놓치고 오는 바람에 다시 찾아갔다. 영원한 산사람 우천 허만수는 ‘지리산의 산신령’으로 불렸을 만큼 전설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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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천 허만수 추모비

    추모비의 전면에는 ‘산에서 태어난 산사람 우천 허만수’라고 적혀 있다. 어려운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이 절실하다. 짧은 인생을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난 그의 추모비 뒷면에 새겨놓은 글을 옮겨 교훈을 삼고 싶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속에서 빛바랜 돌에 새겨진 글자도 판독이 어려울 만큼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비문의 전문이다.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돼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일러 산사람이라 했던 그분 우천 허만수님은 1916년 진주시 옥봉동 태생으로 일본 경도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재학 시 이미 산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열정이 유달랐던 분이다.

    님은 산살이의 꿈을 이루고자 40여 세에 지리산으로 들어와 가없는 신비에 기대 지내며 산을 찾는 이를 위해 등산로 지도를 만들어 나눠주기고 하고, 대피소나 이정표시판을 세우기도 하고, 인명구조에 필요한 데는 다리를 놓는 등 자연을 진실로 알고 사랑하는 이만이 해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길을 개척해 보였다.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여년, 조난 직전에 사람들을 구출하거나 목숨을 잃은 이의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헤아릴 수 없으며, 지리산 발치의 고아들에게 식량을 대어주고, 걸인들에게 노자를 보태어 준 일 또한 이루 헤아릴 길 없으니, 위대한 자연에 위대한 품성 있음을 미뤄 알게 되지 않는가.

    님은 평소에 변함없는 산의 존엄성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인생관을 낳게 한다고 말한 대로 몸에 배인 산악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줬으니, 풀 한 포기, 돌 하나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일이나, 산짐승을 잡아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되돌려받아 방생 또는 매장한 일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랴. 님은 1976년 6월 홀연히 산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지리 영봉 그 천고의 신비에 하나로 통했음인가. 가까운 이들과 따님 덕임의 말을 들으면 숨을 거둔 곳이 칠선계곡일 것이라 하는 바, 마지막 님의 모습이 6월 계곡의 철쭉 빛으로 피어오르는 듯하다. 이에 님의 정신과 행적을 잊지 않고 본받고자 이 자리 돌 하나 세워 오래 그 뜻을 이어가려 하는 바이다.’

    비석의 옆면에 ‘진주산악회 1980년 6월 8일 강희근 짓고, 이길성 쓰다’라고 적혀 있다.

    (마산대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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