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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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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무궁화에 거는 기대- 고비룡(밀양창녕본부장·부장)

  • 기사입력 : 2017-03-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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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진(東晉)의 문인 곽복(郭璞:276~324)이 쓴 지리서 산해경에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君子之國有薰華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기록도 있다. 한국에서 자생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위 기록을 보면 4세기 중엽의 우리나라 곳곳에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뜻함)이라 했고, 구당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중국에서 한국을 근역(槿域)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예종(睿宗)은 고려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무궁화는 재래종으로서 볼 만한 것이 드물다. 이러한 현상이 된 것은 외환(外患)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과 한국인들이 정원 꾸미는 것을 전통적으로 지나친 사치로 생각해 왔던 까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큰 원인은 일제강점기에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림으로써 큰 수난을 겪은 때문이다. 꽃나무가 이처럼 가혹한 시련을 겪은 사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애국지사 남궁억은 무궁화 묘목을 전국적으로 보급해오다가 형무소에 투옥됐고,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됐다. 1950년부터 서울대학 농과대학 화훼연구실에서 학문적인 연구와 육종(育種), 세계적인 원예품종의 도입과 일반재배법의 개발 등이 시작됐다.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와 농진청 원예연구소에서도 무궁화 육종에 착수했다. 1972년 역사상 처음으로 약 100품종의 무궁화를 전시했다고 한다.

    창녕군은 지난 2000년부터 3·1독립운동 23인 결사대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영산호국공원에서 창녕읍 충혼탑에 이르는 40km 구간 주요 도로변에 사업비 1억6000만원을 들여 무궁화 1만여 그루를 심어 전국 최대의 무궁화 명품길을 조성해 지난 2014년 산림청에서 실시한 ‘제1회 나라꽃 무궁화 명품 가로수길’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군은 올해부터 산림청에서 권장하는 무궁화 단심계 홑꽃 우수품종을 4~5년 동안 자체 양묘해 기존 무궁화를 지속적인 품종개량은 물론 2025년까지 군 전역으로 무궁화동산 및 무궁화 가로수길을 확대 조성하면 무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와 나라꽃 선양에 기여하고, 충혼의 고장으로서의 위상을 높여 나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고비룡 (밀양창녕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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