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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국가 미래 경쟁력, 지식재산- 정용환(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 기사입력 : 2017-03-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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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은 지식재산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휴대전화 속에만 수십만 개의 특허가 숨어 있다. 세계는 지금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변화하고 있으며 세계경제 질서는 지식재산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구글이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약 13조원에 인수한 것은 기업이 탐나서가 아니라 모토롤라의 특허가 탐났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세기적인 특허 대결도 미래의 기업 가치는 특허에 의해서 좌우되고 세상의 가치는 창조성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유럽발 르네상스와 산업혁명도 특허를 통해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특허기술에 대해서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과학자들에게 르네상스의 불꽃을 번지게 했고, 16세기 영국은 과학자들에게 발명품에 대해 독점권을 인정해 주어 이들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도록 했다. 18세기 미국은 헌법에 특허조항을 명시했고 이런 제도는 에디슨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미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필자는 과학자로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8년간의 국제 특허소송을 경험한 바가 있다. 16년간의 장기연구를 통해서 원자력 신소재 개발을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연구 프로젝트 착수 시점부터 세계 1등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특허 확보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과정에서 프랑스 기업 아레바가 우리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해 8년간의 특허 전쟁을 치르게 됐다. 아레바는 스마트폰에 비유하자면 미국의 애플 정도로 비견될 수 있는, 원자력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회사로 알려져 있는 회사이다. 연구만 하던 필자가 처음으로 외국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더욱 어려웠던 점은 이 건에 대해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는 최종 승소해 특허전쟁을 마무리하고 산업체에 우리 기술을 이전하는 성공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16년간 매진했던 신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보다 8년간의 국제 특허소송이 필자에게는 더욱 힘들고 악몽 같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중소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아무리 우수한 세계적인 신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 글로벌 대기업으로부터 국제 특허소송을 당했을 때 과연 얼마나 버티고 승리해 우리 기술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그나마 특허에 대한 보호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응시스템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장기간의 소송에 매달리다 보면 기업은 성장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약에 승소해 특허를 지켜낸다 해도 보상비용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에 기업은 이미 도산 위기에 빠지게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특허출원이 많은 특허 강국이다. IT 강국답게 특허 출원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특허를 보호받지 못할 확률이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는 특허침해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 특허무효 판정을 받을 확률이 50%를 넘어간다. 특허를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과연 누가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 특허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특허 심사과정에서 면밀한 심사를 거쳐서 확실한 기술에 대해서만 특허를 등록시켜주고, 일단 등록된 특허는 잘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또한 특허침해소송에서 승소하면 손해배상을 받게 되는데 손해배상액이 터무니없이 낮다. 그래서 특허기술을 침해당해도 실질적인 보상이 어렵다. 따라서 특허소송에 따른 보상액을 현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유럽의 특허청 같이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기술판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기술료에 대해서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 정책 입안자들이 다시 한 번 진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은 지식재산에 의해서 그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식재산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국가적인 차원의 고민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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