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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변화의 당위성- 박영조(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 기사입력 : 2017-03-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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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 가죽을 바꾸는 것을 개혁(改革)이라고 한다. 무척 어렵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넘어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기술계만큼 변화를 꺼려하는 집단은 없다. 왜? 우리는 전문가이니까! 전문가의 장점이 무엇인가. 그 타이틀은 새로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 필요가 없는 자격증이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평생 우려먹으면서 사는 것보다 좋은 게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그렇게도 지난하지만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왜 변해야만 하는지를 한 번 더 뼈저리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례를 들어 교훈을 얻고자 한다.

    근거를 가진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희망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평소엔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난제라도 아주 절박한 상황까지 몰리게 되면 그 문제를 풀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황농문 서울대 교수의 몰입 개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알고 있고, 항우의 파부침주(破釜沈舟)나 한신의 배수지진(背水之陣)은 이를 잘 실증해줬던 유명한 고사다. 하지만 사람이 그러한 극한 상황까지 몰리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며, 앞의 얘기처럼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이미 주역(周易)에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이라 하지 않았던가. 문제를 풀 해결책이 마땅히 없을 것 같은 꽉 막힌 상황이 오면 그때는 변해야만 하고 변하면 드디어 해결된다고 했다.

    변해야만 된다는 당위성에 대해 좀 거창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먼 옛날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잘 살고 있었다. 땅보다 먹이도 많고 무서운 맹수들은 적고 밤이면 잠을 설치게 하는 벌레들도 덜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숲이 줄어들면서 나무 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결국 누군가 땅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나무에서 내려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두 발 걸음으로 낯선 초원에 처음 발을 내디딜 때의 두려움이 어떠했을까. ‘다른 원숭이면 모를까 나는 내려가기 싫다’라는 게 거의 모든 원숭이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나무에서 내려온 바로 그 원숭이가 나중에는 인류로 진화하고 지금은 그 나무, 그 숲이 아니라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변화를 거부했던 다른 원숭이들은 아직도 그대로 원숭이로 남아있거나 더 진화했어도 유인원에 머무르고 있다.

    기업에서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군령과도 같은 위엄으로 강제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과 다소 운영방식이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어떻게 해야 그 어렵다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관리자와 연구기관의 매니지먼트는 연구자들의 심정이 까마득한 옛날 나무에서 내려오며 두려움을 느끼던 그때 원숭이의 심정과 같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기술 전문가는 가능하다면 지금의 지식과 기술로 정년은퇴를 하려고 하는 욕망을 버리기 힘들다. 달리 방법이 없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왜냐하면 강제가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변화(개혁)이므로, 강제하지 않을 요량이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길 말고는 무엇이 있겠는가.

    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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