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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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리고 서툴지만 詩 향한 열정은 뜨거워요

장애인·비장애인 구성 ‘호박문학회’
다섯번째 작품집 ‘매화를 찍다’ 출간
2008년 진해장애인복지관서 활동 시작

  • 기사입력 : 2017-03-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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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재홍씨는 금요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복지관에서 열리는 문학수업이 있는 날이어서다. 지체장애 2급인 오씨는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워 다른 이의 손을 빌려야 집 밖 출입이 가능하다. 글씨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아 그리듯 쓰면 노모가 다시 공책에 반듯하게 옮겨줘야 하지만 그에게 시를 쓰는 순간은 가장 즐거운 한때다.

    #2. 제지은씨는 정신장애 3급으로 15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낮은 자존감과 삶에 대한 회의가 반복됐다. 그랬던 그녀는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며 세상에 애착이 생겼다. “삶에 대한 바람이나 의지를 담아 시를 쓰면 후련해지더라고요. 이제 극단적인 생각은 안 할 겁니다. 시를 쓰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졌거든요.”

    지난 24일 오후 3시 창원시 진해구 진해장애인복지관 2층 방과후교실. 15명 남짓한 수강생이 옹기종기 앉아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 8명과 비장애인 7명으로 구성된 진해장애인복지관 문학동호회 ‘호박문학회’ 회원들이다. 장애인들의 문학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길을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난 2008년 11월 복지관 내 호박문학교실이 생겼다. 이후 이름이 호박문학회로 바뀌고 몇몇 새 얼굴도 생겼지만 9년째 시적 열정을 이어오고 있다.

    매주 금요일 2시간 동안 문학수업을 하는데, 첫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는 책이나 교재로 수업을 하고 넷째 주에는 창작시를 서로 품평하는 등 꽤나 짜임새 있는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강사도 등단한 작가가 맡는데, 1대 손영희 시인에 이어 김주경 시인이 2015년부터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출석을 부른 후 시작된 수업에서 김옥영 회원이 ‘허무한 마음’이라는 제목의 시를 읊었다. 서툴지만 곱게 써 온 시를 같은 반 회원들에게 내놓고는 반응을 살폈다. “시에 아픈 내용도 넣어줘야 시가 깊어지지요. 둘째 행과 마지막 행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간결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김 시인은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더 좋은 시를 완성하기 위해 피드백하기 바쁘다. 같은 반 회원들도 자신의 시를 퇴고하듯 꼼꼼하게 시적 감성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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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수업을 시작하면서 회원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어떤 회원은 새벽 4시면 일어나 시 창작에 몰두할 만큼 시가 가까워졌다고 하고, 또 다른 회원은 시를 읽는 것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들에게 이 수업은 언어로 소통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학수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함께한다. 지난 가을에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1박2일로 전주 최명희문학관에 문학기행을 다녀왔고, 그동안 써놓은 시를 차곡차곡 모아 광석골에서 시화전도 열었다.

    회원들은 얼마 전 2년간 꼼꼼하게 다듬은 시를 건져올려 작품집 ‘매화를 찍다’를 펴냈다. 벌써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평생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하는/ 한스러운 25년/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정된 공간에서/ 가장의 무거운 숙명을 안고/ 퇴색되지 않으려/ 얼마나 가슴 조였을까// 날마다/ 붉은 눈물 우수수 떨어내며/ 노란 나비처럼 웃던 시간의 연속// 흐르는 세월 앞에/ 보지 않아도 보이는 그의 뒷모습/ 오늘따라 흰머리가 창백하다. -빛 잃은 등-

    김순덕 회원이 사고로 장애가 생긴 남편을 생각하며 쓴 시로, 장애인 가족의 애환이 잘 묻어난다. 책에는 14명의 회원이 공들인 시 66편과 수필 2편이 들어 있다. 회원들은 작품집을 받아들고 감격스러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름이 적힌 시집을 받으니까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문예지를 엮은 김주경 시인은 “회원들이 느리면 느린 대로, 서툴면 서툰 대로 자기만의 색깔과 언어로 시를 썼습니다”며 “두 줄의 휠체어 바퀴 자국에는 꾸미지 않은 민얼굴 같은 언어들이 오롯이 살아 있죠. 그래서 호박문학회원들의 시 한 편 한 편에는 아픔과 기쁨, 희망이 피부에 와닿듯 전해집니다. 시들이 독자에게 따스하게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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