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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조규홍 (2) 내 머리 속 지우개야 일 해라

  • 기사입력 : 2017-03-30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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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심지어 인류가 망각 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지구에서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난 왜 잊어서는 안 될 것인 부모님 생신, 여자 친구와 기념일, 보고 싶은 공연 예매일 등을 잊는 것인가. 반면 중2병 때의 일탈, 대학 시절 객기 같은 것들은 문득문득 생각나 왜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가.

    진짜 잊어야 하는 것이 여기 또 있다. 나는 어쭙잖게 기사를 아주 조금 써봤다. 지금 읽어보면 손과 발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려 드는 글 같다. 주간지에서 조금 일 해봤다는 것은 경남신문에 와서 내 발목을 잡았다. 주간지의 기사와 경남신문의 기사는 천양지차였다. 일하는 방식은 더 차이가 크다. 이를 여실히 느꼈던 경험은 교육 1주차 금요일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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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룸 허위 매물 취재 당시 조사했던 게시물.

    인제대 근처의 원룸 허위 매물 관련 취재를 하러 창원에서 김해로 달려갔다. 피해를 겪은 인제대 학생을 급하게 수소문해서 만났고 점심은 우유와 샌드위치로 때웠다. 원룸 매물 10개를 조사를 해야 했는데 김해에서 복귀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내가 재촉해 당시 중개사도 점심을 거르고 방을 보여줬다. 한 카페에 들어가 작성한 기사를 선배에게 보내고 나오는 길에 중개사를 다시 마주쳐서 ’점심을 늦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 됐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신이 없었던 몇 시간이 지나고 창원대 앞에 기사 검토를 받기 위해 집결했다. 나의 기사는 한 마디로 기사가 아니었다. 선배 지적 결과 내 기사가 르포도 아니고 분석기사도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선배의 검토가 끝나고 처음에 썼던 내 글을 보며 사람도 아니고 시체도 아닌 프랑켄슈타인이 쓰면 그런 글이 나올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배가 뚝딱뚝딱 고쳐주는 글은 그야말로 콩 심은 데서 팥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하 한 참 멀었구나. 난 과거에 뭘 했던 것인가. 이게 자괴감이란 건가.’

    2주차 금요일에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흡연 PC방의 실태를 취재하고 습작 기사를 썼다. 실제 기사에는 내가 쓴 부분이 진짜 ’콩 심은 밭에 난 팥 한 톨’처럼 포함 돼 있었다. 선배들의 실력에 몸서리 쳐졌다. 선배들의 밭에는 팥 한 톨 대신 알이 튼실한 감자들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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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취방 옆 텃밭에 아직 덜 자란 파가 심겨있다.

    그동안 내 머리 속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지워내야 했다. 하루는 터덜터덜 방으로 가면서 방 옆에 있는 텃밭의 파가 보였다. 그렇다. 내 머리 속에는 파와 비슷한 것이 자라있지만 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뽑아내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였다. 과거엔 글을 늘리는 것이 일이었다면 이젠 줄여야 한다. 정반대인 것이다.

    곧 봄이 올 텐데 저 텃밭의 파는 나의 기사 쓰기 실력 보다 더 먼저 자라는 것은 아닐까. 완연한 봄이 올 무렵에는 저 파가 다 자라는 것처럼 내 기사 실력도 그만큼 자라야 한다. 수습이 끝난 자의 의무다.

    내 머리 속 지우개야 일을 해라. 이젠 지워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가.

    조규홍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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