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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박기원 (3) 촛불과 태극기

  • 기사입력 : 2017-04-05 19: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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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이 태극기였다. 먼발치에서 구경이나 하려 했지만 이미 집회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었다. 경찰의 인벽과 차벽은 집회 참가자와 대중의 경계였다. 인파를 피해 도로 건너편으로 가려고 시도했지만 경찰의 벽은 너무 높고 두꺼웠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상이 되어버린 집회에 의경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시위는 집회자들의 몫이었고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경찰의 몫이었다. 체념하고 이들의 집회를 곁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이들은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었다. 반복된 구호에는 운율이 있었고 태극기도 여기에 맞춰 일시에 흔들리고 멈췄다. 마이크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장병을 움직이는 지휘관처럼 구호가 간결했고 목소리는 거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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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태극기 집회에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언론진흥재단에서 주관하는 수습기자교육에 참가해 모처럼 주말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기상을 재촉한 것은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커다란 스피커였다. 9시부터 탄핵 무효를 외치는 목소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어쩌면 이 광경을 목격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옷을 주워 입고 광장으로 나갔다. 삼월의 끝자락이었지만 바람은 매서웠다. 광장에서 참가자들의 오른 손에는 작은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왼손에는 아스팔트 바닥의 냉기를 막는 단열 방석이 쥐어져 있었다. 연령대는 40대, 50대, 혹은 그 이상으로 다양했다. 빈손으로 인파에 휩쓸린 내게도 누군가가 태극기와 단열 방석을 나눠줬다. 나는 광장 한 가운데서 방석을 깔고 자리 잡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사람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나 한 번 들어보자 싶었다.
     
    여지껏 접하지 못한 목소리였다. 내가 견지해 오고 있는 의견과는 분명 배치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고, 논리에는 일관성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87년 민주화를 경험했던 이들이다. 이것이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촛불과 태극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열망을 함께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광장의 사람들은 '국회해산'과 '탄핵무효'를 외쳤고, 청계천을 걸어 보신각으로 행진했다. 이 집단행동에 흥미를 느낀 외국인 관광객들도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이들과 함께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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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개월 전 나는 두 차례 광화문 촛불집회에 갔다. 창원과 서울은 비록 긴 여정이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로 듣고 싶었고, 나의 목소리도 함께 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광화문 세대의 탄생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던 세대는 386으로 불리는 기성세대였다. 이제 세대가 바뀌었다. 지금껏 우리가 치러 온 수차례의 집회는 '386세대의 바통을 광화문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나는 스스로 정의 내렸다.

     
    광장에서 태극기와 촛불은 서로 대립했다. 한쪽은 탄핵반대를 외쳤고 한쪽은 탄핵찬성을 외쳤다. 하지만 이 두 집단이 가진 진정성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성격이 극명하게 대립되었으나 묘하게 닮은 점 또한 없지 않았다. 두 집회의 공통점은 '시민 항쟁'의 모습을 띈다는 것이 아닐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또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었다. 태극기와 촛불의 서로 다른 목소리는 경찰의 차벽 너머로 전달됐다. 민주주의가 오작동한다면, 광장은 또다시 다양한 목소리로 뒤섞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패드 그림 어플 위에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을 가득 칠했다.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이 색깔만은 분명하게 나타내고 싶었다. 더욱 진하게 덧칠했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양극뿐만이 아닐 것이다. 빨강과 파랑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색깔, 그 목소리를 가감없이 듣겠다는 내 작은 다짐이었다. 여태껏 기자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 앞으로 어떤 기자가 될지, 깊이 고민하겠다.

    박기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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