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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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6) 창원 북면 ‘온천양조장’

둘러앉아 한잔 또 한잔 … 술 나누고 정 나누던 집
일제시대 소형 영화관 자리에 양조장 생기며 역사 시작

  • 기사입력 : 2017-04-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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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양조장 앞마당은 늘 사람들로 붐볐어요. 잔칫집 분위기 같았죠. 특히 장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눴어요.”

    1970~1980년대 아름드리 이팝나무와 은행나무, 등나무 등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북면막걸리의 원조 ‘온천양조장’ 앞마당은 인근 마을사람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랑방’이었다. 더욱이 이팝나무 하얀 꽃이 앞마당을 덮는 4월이면 흰 눈이 내린 듯한 분위기가 마치 무릉도원 구름 위에 앉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 많은 이들이 막걸리 잔을 마주쳤다.

    배고픈 시절, 멀리서 보면 흰 꽃으로 덮인 이팝나무의 모습이 마치 사발에 흰 쌀밥이 소복이 담긴 것 같아 이밥(쌀밥)이 이팝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보릿고개 시절, 막걸리는 밥 대신 먹는 농주(農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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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째 북면막걸리를 빚고 있는 권익동씨가 온천양조장의 변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창원 ‘북면’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바로 ‘온천’과 ‘막걸리’일 것이다. ‘북면 온천’은 질환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면 온천수를 마시면 간 질환, 만성 변비, 당뇨병, 비만증, 위장병에 좋고, 이 물로 목욕을 하면 신경통, 관절염, 습진, 창상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격렬한 신경통과 류마티스, 잠수병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여기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북면 막걸리’이다. 북면에는 한때 막걸리 양조장이 성업을 이뤘다.

    온천양조장 막걸리의 역사는 거의 1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면서 술도가(양조장)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23년 전인 1994년까지만 해도 일본식 건물에 양조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막걸리를 만들었다.

    양조장이 생기기 전 이곳은 일본인들이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던 소형 영화관이었다. 이후 박씨라는 성만 알려진 사람이 이 자리에 양조장을 처음 지었고, 다음으로 북쪽(이북)에서 넘어와 북면에서 일가를 이룬 ‘깜둥이(일명 깜디)’라는 별칭을 가진 김수창씨가 양조장을 운영하며 막걸리를 생산했다고 한다.

    현재의 온천양조장은 1967년 고 권효근 선생이 인수해 옛 일본식 가옥에서 25년가량 막걸리를 만들었으며, 1994년 새 양조장을 지어 옆으로 이사했다. 아들인 권익동(58세)씨는 1990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다. 50년이란 세월 동안 창원을 대표하는 북면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걸쭉한 한잔에 목을 축이며 시름을 잊었던 서민들의 술 ‘막걸리’는 1970~1980년대 호황을 누렸다. 온천 양조장은 설·추석 명절 때면 술을 만드는 제조자 1명에 3명의 배달꾼 등 4명이 1조를 이뤄 며칠씩 밤샘을 했다.

    권익동씨는 “북면 38개 마을 중 반을 나눠 19~20개 마을에 짐바자전거(운송 자전거)로 배달을 다녔다. 한 말짜리 하얀 통을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 한 마을에 10말씩 날랐으니 당시 막걸리가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짐바자전거에 빈 막걸리(20리터) 통을 몇 개까지 실을 수 있는지 아느냐’며 “자전거에 20개를 매달고 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달릴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막걸리를 찾는 이가 없어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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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익동씨가 북면막걸리 제조 첫 단계로 밀가루를 반죽기에 넣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창원공단지역에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막걸리가 50말씩 나갔고, 묘사, 모내기가 있는 날에도 막걸리를 찾는 이들로 붐볐지만, 지금은 막걸리 찾는 이가 거의 없다”며 “2009년에 막걸리가 일본에서 웰빙식품으로 잘 팔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살아났고, 2012년 들어서면서 웰빙바람으로 한때 막걸리가 인기를 끌었고지만 막걸리 열풍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북면 장날은 온천 양조장 앞마당 평상도 장날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장을 찾은 이들은 꼭 양조장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켠 후 집으로 돌아갔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인근 동네에서 일어나는 집안 대소사는 물론 마을소식을 전했다. 때론 막걸리에 취한 이들이 평상을 차지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한 편의 추억이 되었다.

    “북면에 사는 70~80대 어르신들 중 양조장 할매 모르는 사람 없을 걸요. 모친은 인심이 후했어요. 워낙 인심이 후해서 오가는 사람, 배고픈 사람들이 양조장을 찾으면 모두 막걸리 한 사발을 먹게 했어요. 아마도 공술(공짜술) 한 번 안 먹은 사람이 없을 걸요.” 권익동씨는 모친 고 황복덕 씨를 북면 온천 양조장의 ‘인심 좋은 안방마님’으로, ‘북면 막걸리의 산 증인’으로 소개했다.

    권씨는 인심 좋은 안방마님 덕분에 좋은 일도 많았지만 때론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옛날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와 외상장부(거래장)를 들고 와 막걸리 1~2되를 받아가곤 했어요. 근데 어머니 고향이다 보니 외상값 받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허허”라며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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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발효시키는 사입실에서 작업자가 나무주걱으로 막걸리를 저어주고 있다.


    1970년대 하루 막걸리 소비량이 어림잡아 75말(1500ℓ) 정도였다면 요즘은 하루에 20~25말(400~500ℓ)도 소비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되고 다양한 술들이 출시되면서 막걸리를 찾는 발길이 끊긴 것이다. 양조장 한편에는 1970~19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시기에 사용했던 커다란 도가지(옹기)들이 늘어서 있어 당시의 호황을 짐작케 했다.

    북면 온천 양조장 막걸리의 주원료는 밀가루다. 요즘은 쌀막걸리도 많이 생산되지만 온천 양조장이 밀가루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일단 쌀막걸리는 규제도 많고 무엇보다 창고에 저장된 묵은 수입쌀을 사용하다 보니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아 술 제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온천 양조장도 초창기에는 옥수수와 밀가루로 술을 빚었고, 쌀막걸리가 나오면서 잠시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밀가루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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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인리스 막걸리 저장탱크 대신 예전에 사용하던 대형 술항아리.


    권씨는 “밀가루와 쌀막걸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밀은 걸쭉한 대신 구수하고, 쌀은 멀건 대신 담백하다”고 설명한다.

    온천 양조장의 막걸리 제조과정은 다른 막걸리 제조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밀가루 반죽기로 반죽을 하고 증자기에 넣어 찐 후 다시 식혀서 제성실에서 3일간 숙성시키면 맛있는 막걸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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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씨는 온천 양조장 막걸리가 맛있는 이유로 북면 물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으뜸이라고 말한다. 모든 음식에 정성이 필요하지만 막걸리는 조금만 방심하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변해 폐기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들더라도 양보다는 깨끗하고 질이 좋은 막걸리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는 선친의 뜻에 따라 오늘도 그는 서민들이 마실 막걸리를 보다 맛있게 제조하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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