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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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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25) 산청 (14) 삼장면 내원골 ~ 시천면 중산리

동족상잔의 상흔은 세월에 흘려보내고…
아픈 역사의 교훈은 가슴 깊이 남기고…

  • 기사입력 : 2017-04-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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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봄날 덕천강을 따라 지리산 가는 길은 행복이 넘쳤다. 아름다운 길에 벚꽃이 함박눈처럼 떨어져 꽃눈을 뿌렸다. 시천면 덕산 5일장에서 잠시 여유를 부리다 삼장면 내원사로 향했다. 덕산장은 지리산 특산물이 모이는 붐비던 5일장이었다. 지금은 세월 따라 장터는 한가로웠다. 예전에는 5일장에 보따리를 이고 오거나 경운기를 타고 오는 정겨운 모습도 있었다.

    가끔 손을 들어 차를 태워 달라고 하는 노인들도 만났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길에서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농촌에도 소가 쟁기로 논밭을 가는 정겨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걷는 것도 ‘도보 전문가’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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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빨치산 토벌 현장이었던 산청군 삼장면 안내원마을 전경.
    세월은 가도 자연은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삶은 분주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늘 행복한 삶을 소망하고 있다. 행복은 작은 것에서부터 온다. 고급 옷을 입고 비싼 귀금속으로 치장을 하면 겉은 화려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으면 불행의 씨앗이 된다. 행복한 삶은 자신을 낮추고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 온다. 늘 배려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데서 온다. 봄이 오는 지리산 자락에서 지금 행복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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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내원골에 지어진 허름한 움막.

    내원골 -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

    내원골로 가는 길에 내원사로 먼저 갔다. 언제나 가도 흰 마사토가 깔린 경내는 정갈하며 고즈넉한 풍경이다. 곶감이 매달린 내원사는 절이라기보다는 대갓집같이 정갈하고 그윽한 분위기이다. 내원사는 내원골과 장단골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 소리가 불경 소리를 대신한다.

    스님은 출타를 하고 홀로 절집을 지키고 있던 노보살에게 지난달 ‘우리 땅’ 내원사 순례 기사가 실린 신문을 전하고 나오는데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 갈 길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 바나나를 몇 개 챙겨 주며, 절집에 오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란다. 원래 산판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된 약 4㎞의 도로를 따라 내원계곡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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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위쪽에서 흐르는 지리산 내원골.

    내원골은 바깥내원과 안내원마을로 나눠져 있다. 안내원마을(해발 800m) 끝자락에는 지리산 등산로가 있다. 혼잡한 기존 등산로를 피해 구곡산(해발 961m) 황금능선을 찾는 등산객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가면 도선국사가 다녀갔다는 국사봉이 있다. 내원골에는 내원사의 부속암자가 여럿 있었다. 구전으로만 전할 뿐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원마을 이홍규(53) 이장은 옛 암자 터가 4개 정도 있으나 풀이 우거지고 무너져 흔적조차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계곡을 따라 오래 되지 않은 작은 절집들이 보였다. 내원골 계곡 주변에 경치가 좋은 곳에는 별장이나 펜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원주민이 30가구 정도이고 10가구 정도는 외지인이다.

    안내원 마을 끝자락에서 조카가 집을 수리해주고 있는 성필녀(94)씨를 만났다. 12살 때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줄곧 살며 5남1녀를 키웠다고 했다. 남편과 20년 전 사별하고 살고 있는데 지금도 안경을 끼지 않아도 글을 읽을 수 있단다.

    현대사의 흔적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안내원마을 끝집에서 정순덕이 태어났고, 그녀는 1955년 5월 이후 무려 8년 동안 ‘망실공비’로 유혈 투쟁을 했다. 그녀의 부친은 단성면에 살았는데 지리산 속의 명당 청학동을 찾는다며 옮겨왔다.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가 비극으로 휩쓸리게 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정순덕은 최후의 2인 부대였던 이홍희와 이 마을에 나타나 정보원으로 이용했던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1963년 12월 11일 이홍희는 현장에서 사살되고 그녀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돼 비극적인 현대사를 마감했다. 그녀가 숨어 살았던 집터에는 20년 전 귀촌했다는 조기진(68)씨가 집을 새로 지어 식당을 하고 있었다. 감나무가 많아 곶감 농사도 짓고 양봉을 하며 자연에 기대어 욕심 없이 살고 있었다.

    마을에는 정순덕의 아지트와 생포했다는 표지판이 있다. 정순덕이 투쟁했던 비밀 아지트는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에 재현해 놓았다. 지리산 내원골은 아픈 현대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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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입구에 있는 조형물. 국군과 인민군이 손을 맞잡고 있는 형상이다.

    지리산성모상 -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덕천강을 따라 시천면 중산리로 향했다. 산간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대부분 강을 따라 이어져 여름이 한 발 다가선 날씨는 상쾌함이 가득했다.

    시천면 중산리에서 지리산휴양림 가는 방향으로 접어들어 작은 고개를 넘으면 금방 오른쪽에 약수사, 천왕사 안내표지가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오른쪽에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있다. 육중한 막돌탑 사이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임시 건물로 지은 대웅전 옆에 천막이 있고 노천 자연석 바위를 파고 성모석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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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리 지리산휴양림 인근에 위치한 천왕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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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사 내에 모셔진 성모석상의 모습.

    성모석상은 높이 120㎝, 너비 50㎝ 크기인데 앉은 자세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이 성모석상은 1000년의 세월 동안 지리산 천왕봉에 있었던 것으로 모 산악회 회원들이 예전의 장소에 철구조물을 세우고 천왕봉에 복귀시켜 안치하겠다며 소송을 했을 정도로 지리산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리산 법계사도 넓은 터를 마련해 놓고 성모상을 조성하겠다는 불사 안내문이 있었다.

    성모석상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이 성모석상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 궁금했다. 대하 르포 ‘지리산’ 상권(최화수 지음)에 성모석상의 기구한 팔자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석상은 지리산에 흔한 화강석이 아니라 약간 검은 빛이 도는 돌이다. 이곳 돌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석상의 모습은 쪽진 머리에 얼굴이 둥글고, 코가 우뚝한 40대 여인으로 표정이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이 성모석상은 그동안 수난을 당해 외관이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했다. 천왕봉에서 1000년 동안 봉안됐던 이 석상이 1986년 급조된 천왕사에 있게 된 연유를 알아보려고 주지스님을 찾았으나, 인사만 나누고 팔이 아프다며 문을 닫아버렸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송도의 한 부인이 지리산에 들어와 산신에게 빌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커서 난세의 후삼국을 통일하니, 그가 고려 태조 왕건이다. 왕건은 왕이 된 뒤 어머니 위숙왕후의 성상을 만들어 지리산 천왕봉에 모시고 성모사라고 했다. 그로부터 성모석상은 지리산을 상징한 신으로 존재하며 1000년을 지켜왔다’고 돼 있다.

    성모석상은 조선 성종 3년(1472년) 점필재 김종직이 천왕봉에 오를 때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선조 때는 천연이란 관서의 스님이 사당문을 발로 차고 닥치는 대로 부수고 석상을 밖으로 던졌다고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성모석상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나 그해 11월 보쌈을 당했다. 그후 삼장면 내원사에 있던 성모석상은 원래 자리인 지리산 천왕봉으로 옮겨져 1970년대 초까지 숱한 순례자들의 염원을 들어 주었으나 1972년 5월 한 종교단체에 의해서 벼랑 아래로 던져지는 수난을 당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1986년 6월 2일 중산리 천왕사 조그만 암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지스님은 천왕할매의 현몽에 따라 두상은 1986년 1월 12일 진주의 비봉산 과수원에서 찾아내고 몸통은 천왕봉 남쪽 500m 험준한 통신골에서 찾아냈다고 했다. 진주의 남양석물에서 봉합 작업을 해서 옮겨 온 것이란다. 천왕사 주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상한 현몽설을 주장했다.

    성모석상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진 천왕사에 신도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세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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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중인 국군과 인민군을 표현한 조형물.

    천왕사를 내려서면 인근에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이 있다. 현대사의 아픈 역사라서 그냥 지나치려다 들어섰다. 주말인데도 매표소에서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2001년에 건립되어 문을 열었다.


    6·25전쟁을 전후해 지리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선인민유격대에 대한 토벌 작전과 관련된 실물 자료,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유격대와 토벌대에 대한 역사적 사실, 총기류, 압수품, 사진 자료와 문학 작품, 영상물 등이 있다. 야외에는 복원된 유격대 아지트와 토벌대가 당시에 사용했던 중장비 무기, 조형 작품 등이 있다. 내 발걸음을 문득 멈추게 하는 것은 유격대원과 토벌대원이 손을 잡고 있는 조각품이다. 이 땅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소망했다.

    (마산대학교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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