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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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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무 - 하영

  • 기사입력 : 2017-04-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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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그렇게 날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아름답게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한없이 속삭여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서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번쯤은 누구나

    그렇게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가지가 한 뼘씩 빛을 쫓아가면

    뿌리는 한 뼘씩 어둠 속을 파고들 듯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운 봄날을 안겨준 벚꽃이 이제는 속절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봄바람에 꽃비처럼 흩날리던 꽃잎을 좀은 쓸쓸해 하면서 바라보았습니다. 꽃이 피어서 아름다웠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우리에게 안겨 줬는지, 그 추억들로 한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도, 추억도 뒤로하고 돌아서고 싶을 때가 있다며, 사라지기까지 원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시인의 심상 (心狀)이 궁금해졌습니다. 1연에서부터 심상찮다고 여겨지더니 급기야 2연에서는 날벼락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한없이 속삭여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서고 싶을 때가 있다’니 시인은 분명 몹시도 상심한 일을 겪지 않았을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사실들을 상대를 빗대어 원망하기보다는 자기의 상태인 양 ‘싶을 때가 있다’라고 끝까지 괴롭고 힘든 마음 상태를 견지(堅持)하고 맙니다. 3연에서 그 의도가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차라리 그 당장에 아름답지 않아도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나무’가 되겠노라고. 그리하여 한 뼘씩 어둠 속을 파고드는 뿌리가 되겠다고 처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이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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