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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조규홍 (4) 봄이다, 그대 청춘도 꽃 피어라

  • 기사입력 : 2017-04-18 19: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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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우연히 개나리에 대한 숨은 사실을 알게 됐다. 개나리는 겨울을 겪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따뜻한 지역에 심은 개나리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푸른 잎만 무성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습성을 지닌 식물이 개나리 말고도 철쭉, 진달래, 백합, 라일락 등 많다. 추위를 거쳐야만 꽃을 피우는 현상을 춘화현상(春化現象)이라고 부른다.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며 친구를 한 명 만났다. 도로 가에 있는 개나리들이 꽃을 피웠지만 그의 꽃은 아직 더 기다려야 되나 보다. 그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26만명 중 한 명이다. 올해로 3년차 공시생인 그는 화창한 어느 봄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험장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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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화현상을 겪어야 꽃을 피우는 나무.

    “밥 먹자!”

    그의 첫마디다. “뭐 먹고 싶노. 술 한 잔 할까?” 나의 대답이다. 시험은 어땠는지 묻지 않았다. 시험이 또 남아서 술은 안 된단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시생들의 가장 큰 힘든 점은 ‘외로움’이다. 그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부하는 것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때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공시생들이 공부 때문에 사람 만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이유는 여윳돈이 없어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돈이 없으니 친구 만날 자유도 없는가 보다”라고 했다. 그랬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력 없다면 대부분의 자유를 박탈당한 셈이 돼버린다.

    그에게 봄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그는 초록으로 물든 나무와 꽃들이 무성한 봄,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2년 동안 봄을 맞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창문으로 문득 들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이 그가 봄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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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시생 친구의 공부방 모습.

    그도 과거엔 엄연한 회사원이었다. 그가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는 철밥통도 칼퇴근도 아니다. 공무원의 노동환경이 가장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입사할 때 부모님의 지위도, 학벌도, 성별도, 나이도 상관없다. 또 시험 합격 점수가 명확하게 나온다는 점에서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반 기업 채용과도 다르다. 떨어졌다면 어느 과목을 얼마나 더 공부해야할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공무원에 임용되면 근무환경은 사기업과 천지차이다. 업무분장이 철저하며 칼퇴근은 못하더라도 수당 없는 야근은 없다. 회식 강요, 임신에 달갑지 않은 눈빛, 줘도 못 쓰는 휴가도 없다.

    이 시대 수많은 공시생들이 원하는 것은 따듯한 저녁밥을 가족과 먹을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가정과 일의 양립이다. 그는 이 소박한 꿈을 위해 황금보다 더 귀중한 젊은 날의 3년을 투자하고 있다.

    그는 봄 낮의 온기가 아직 다 가시기도 전에 독서실로 향했다. 척박하고 황량한 4월을 보내고 있지만 주저앉지 않는다. 돌아선 그의 등에서 겨울이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춘화(春化)’ 중이리라. 겨울이 길었던 만큼 각양각색 꽃을 피울 것이다.

    잔인한 4월은 가고 진짜 봄날이여 오라. 그리고 수많은 청춘 공시생들의 꽃도 함께 피어라.

    조규홍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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