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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이한얼 (4) 수습기자의 신념

  • 기사입력 : 2017-04-19 15: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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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종로구 프레스센터에 3월 20일부터 2주간 가서 들었던 수습기자 교육에 '카드뉴스 기획에서 제작까지'라는 수업이 있었다. 육성준 충청리뷰 선배기자의 강의였다. 최근 SNS와 인터넷 상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카드뉴스는 내 생각보다 효율적이었고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육 기자가 제작했던 카드뉴스들을 교재삼아 시작된 교육에 21명 교육생은 눈을 떼지 못하고 카드뉴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연에 일희일비하며 각자의 수첩을 채워나갔다.

    이론교육이 끝나고 교육생들이 조별로 카드뉴스를 직접 제작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넉넉지 않은 수행시간에 각 조는 너 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 조는 한 할머니의 사연을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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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종로구에는 여러 관공서들과 큼직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쭉 뻗은 대로에는 자동차가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져 있고 인도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8차선 큰 대로에 수줍게 난 골목길 하나를 따라가면 1.5m 정도의 균일한 높이로 쌓여 있는 종이상자들을 볼 수 있다. 골목길로 불과 몇 미터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내가 서울에 있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쌓여있는 종이상자들 뒤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왔다. 할머니가 밀고 온 당신의 키보다 큰 핸드카트(hand-cart)에는 또 다른 종이상자가 한가득이다. 10여년 가량 서울의 폐지를 수거하고 계신 이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우리 조가 말을 붙였을 때 할머니는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말을 붙여가며 일을 도와드린 결과 할머니의 경계심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종이상자를 쌓아두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공간 옆에는 공사장 펜스를 따라 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골목길이 하나 있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할머니가 생활하는 집이 한 채 나온다. 사실 집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작고 초라하다. 주차장 건물과 공사장, 빌딩에 둘러싸인 할머니의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해 보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을 피워 생활했고 지금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란다. 할머니는 "내가 열 아홉에 시집와서 60년 간 여기 살았지. 꽤 오래됐지?"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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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롭던 결혼생활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남편의 병수발만 십 수년. 집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했지만 폐지를 수거하는 게 돈을 더 벌 수 있어 직업을 바꿨다. 병마에 남편을 여의자 이번에는 큰 딸이 아파 몇 년째 큰 딸 병원비를 위해 폐지를 모은다. 할머니는 밤낮없이 폐지를 수거하고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하지만 오는 5월, 할머니 집 바로 옆에 공사 중인 큰 교회가 완공되면 교회 주차장 출입로를 만들기 위해 할머니의 집은 철거된다. 온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고 공무원이 찾아와서 퇴거를 독촉하는 상황이다. 할머니의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이해가 됐다.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부터 '어떻게 하면 이 할머니를 도울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리 조의 카드뉴스에 '제대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취재를 마치고 강의실로 복귀한 우리 조는 묵묵히 카드뉴스 제작을 시작했다.

    기자로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고 기득권의 배려를 이끌어내는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비판과 견제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괜찮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만드는 카드뉴스는 수습기자 교육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강사와 교육생들을 제외한 누구도 우리의 기사를 봐주지 않을 테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에 기뻤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준 덕에 우리가 들을 수 있었고, 강사와 다른 교육생들이 들을 수 있었고, 진짜 필요하다면 육 기자가 또 한 번 다뤄 세상에 들려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건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기사, 진실에 기반한 사람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나가라면 나가야지" 할머니의 쓸쓸한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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