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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농촌미술관 전원일기Ⅲ- 김철수(창원문성대 교수·대산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17-04-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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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자연 속의 전원미술관을 만들어 보겠다는 나의 오랜 꿈은 IMF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당시 변호사가 조언해 준 문 닫은 식품공장을 예상가보다 현장에서 2000만원을 더 써 넣은 과감한 결단으로 차순위자와 300만원 간발의 차이로 낙찰을 받았고, 폐허의 그 공장은 미술관으로 조금씩 변모해 갈 수 있었다.

    월급쟁이 교수가 비영리 사립 등록 미술관을 사비로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나 화랑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명멸하는 판에 더구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강변마을에서 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인들은 관장이 무슨 갤러리나 화랑의 주인처럼 화상인 줄 오인하고 중개를 부탁하거나 매입을 호소해 올 때는 참 난감하고, 또 안타까운 작가들의 애환을 들을 때면 가슴이 저려 온다.

    어느 일간지 조사를 보니 전업작가들의 한 달 수입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무려 70%에 이른다 하니 작가들의 형편도 참으로 눈물겹기만 하다.

    초창기 공장건물 2개로 무슨 미술관이냐며 조롱까지 받을 때에는 속도 많이 상했지만, 그럴수록 홍보용 팸플릿을 만들어 온 가족을 동원해 우편번호를 일일이 찾아 수천 부씩 전시회 때마다 100번 이상 발송했다.

    습기찬 경비실에서 2년간 단독 기거하며 이른 새벽부터 손수레로 모래를 퍼 날라 콘크리트바닥을 40㎝가량 돋워 잔디를 심고, 크고 작은 꽃나무 1500주와 피라칸사스와 메타세쿼이아로 울타리를 만들었고, 공장 건물은 세 개의 전시실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본관 건물은 건축업에 종사하는 제자와 함께 인부를 구해 직접 집을 지었고, 절감한 경비로 옛 친구와 함께 창작공간과 교육실을 마련했다. 초라했던 농촌미술관은 19년의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모해서 이곳을 거쳐간 학예사, 인턴, 도슨트, 에듀케이터들의 노력과 함께 발전해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문화향유의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김철수 (창원문성대 교수·대산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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