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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이제는 아파트를 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춘우(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04-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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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노후 아파트가 슬럼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의 일부 지역의 노후 아파트 단지처럼 경제성이 있는 아파트들의 재건축 사업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반면, 사업성이 없는 많은 노후 아파트들은 안전 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고도 방치되기 일쑤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는 준공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가 50만 가구에 불과하지만 불과 8년 뒤에는 320만 가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5년에는 분당, 일산 등 수도권의 1기 신도시 다섯 곳을 포함해 수도권에서만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150만 가구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서울 다음으로 아파트가 많은 부산의 경우에도 이때가 되면 전체 아파트의 3분의 1 이상이 30년 이상의 아파트로 채워질 전망이다. 문제는 2020년 이후 아파트 가격 상승 동력이 떨어지면 일본처럼 노후 아파트의 슬럼화와 공동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파트 노후화와 거주자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관리 부실로 슬럼화되는 ‘한계 아파트’가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인구 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주거 유형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1995년 37.7%에서 2015년에는 59.9%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7년에 출간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책 제목처럼 한국은 그야말로 ‘아파트 공화국’이다.

    대규모 아파트의 시조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제이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생각했던 그는 2차대전 후 폐허가 된 도시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식성이 제거된, 콘크리트를 사용한 서민적이며 기능적인 구조물을 제안했다. 그는 주거, 일, 여가, 교통 모두를 아우르는 이상적인 대규모 공동 주택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설계해 1952년에 완공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세계 최초의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부르주아와 중간 계층은 개인 주택을 선호했기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는 하층 계급과 이민자들의 차지가 되었고, 점차 슬럼화되어 갔다. 2005년 파리 교외 폭동이 발생한 곳은 바로 이민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파리 교외의 슬럼화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지역이다.

    한국에서는 프랑스와 달리 아파트는 거의 모든 계층이 선호하는 주거 양식이 됐다. 그렇다면 르 코르뷔제의 이상이 프랑스가 아닌 한국에서 실현된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이상적 주거 공간의 역할보다는 경제적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이미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진동, 일조권 및 조망권 침해 등 환경 갈등은 최근 15년 사이 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익명성과 폐쇄성이라는 편리의 대가로 인간적, 사회적 연대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지적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거주를 인간의 특별한 존재 방식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땅을 착취하거나 혹사하지 않을 때, 하늘을 하늘로 받아들일 때, 또 신적인 것들을 신적인 것들로서 기다릴 때, 말하자면 천지의 깊이를 가늠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소중히 보살필 때 비로소 거주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여 인간의 본질은 회복된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거주함의 진정한 위기는 주택이 모자란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진정으로 거주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데 있다. 그는 말한다. “인간들만이 세계에 거주하면서 비로소 세계로서의 세계를 획득할 수 있다.” 땅과 하늘로부터의 분리를 강요하며, 투기적 욕망만을 자극하는 비인간적인 아파트가 언제까지 우리의 주거의 이상적인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의 ‘세계 내 존재’로서의 진정한 존재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도 이제는 아파트를 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 춘 우

    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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