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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지나치게 친절한 국립공원- 서영훈(부국장대우·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5-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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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여름, 스무 살 남짓의 친구 대여섯 명이 지리산 등정에 의기투합했다. 히말라야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무슨 등정씩이냐며 코웃음 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리산 초입까지 접근하는 길이나 등산로 상태를 고려할 때, 특히 산이라고는 동네 뒷산만 올랐던 풋내기들에게 지리산에 오르는 것은 등정에 가깝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거의 세 시간을 달려 등산 시작 지점인 중산리에 닿았다.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야영을 한 뒤 세석평전에 다다라 사흘째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늦은 아침, 눈에 꽉 찬 지리산의 모습은 장엄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을 뉘었던 텐트 근처의 광경은 참혹했다. 100여 동의 텐트가 있었던 자리는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을 드러냈고, 그 사이사이에 군사용 교통호가 어지럽게 이어졌다. 세석의 상징인 철쭉나무는 텐트에 밀려 듬성등성 겨우 숨만 붙인 채 서 있을 뿐이었다.

    30여년이 지난 현재, 세석평전은 철쭉나무와 어린 구상나무와 풀꽃이 한데 어우러진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지리산 산상에서의 야영을 금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리산을 비롯한 산악형 국립공원에서 야영 규제가 없었다면 대부분의 산이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을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면적은 인구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더구나 대부분 흙산이다. 여기에 한계를 수십 갑절 초과한 인원이 몰려 야영을 한다면, 그 후과는 빤하다.

    30여년 전에는 야영이 지리산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게 문제다. 구례 천은사와 남원 뱀사골을 잇는 성삼재관광도로는 수많은 차량과 인원을 지리산으로 불러들인다.

    산길이라기보다 도로 같은 등산로, 수도 없이 많은 나무계단과 안전시설물과 이정표, 하루 700명이 넘는 대피소 수용능력, 이런 지나친 편의시설도 지리산에 인파를 부르는 요소들이다. 여기에다 어느 대피소에서 어느 대피소 방면으로 갈려면 몇 시까지 통과해야 한다는 식의 산행 통제시간까지 시행되고 있으니, 산을 찾는 의미는 희석되고 재미는 반감된다.

    물론 이런 편의시설과 산행 통제는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또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립공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나친 친절’이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 대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움과 함께 모험적 활동에서 나오는 쾌감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과잉된 시설과 인파를 피해 샛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탐방로를 넓히면서 샛길 출입만 막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자연생태계 보호 등을 위해 꼭 출입을 막아야 한다면 지금의 특별보호구역으로도 충분하다.

    등산, 특히 지리산과 같은 고산지대에서의 등산은 힘들고 불편한 게 당연하다. 등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헬기가 뜬다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힘들겠다 싶으면, 위험하다 싶으면,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지리산에서의 등산은 조금 과격한 레저일 뿐이다. 모든 것을 등산객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국립공원으로의 접근을 힘들게 하고 관리주체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면서도 국립공원을 국립공원답게 유지하는 길이다. 한국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50년을 맞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서영훈 (부국장대우·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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