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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국어오염(國語汚染) - 우리말의 오염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7-05-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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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이후 인터넷 등의 발달로 말 대신 문자로 의사를 교환하는 경우가 많게 됐다. 속도를 필요로 하는 전자통신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줄임말이 유행했다.

    청소년과 기성세대 사이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터넷 줄임말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났다. 청소년들이 국어를 파괴한다고 기성세대 사람들은 크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국어를 파괴하는 데 청소년들보다 더 앞장서 나간다. 국민의 언어생활을 정상적인 쪽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방송·신문이 우리 말 파괴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번연히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래어로 쓴다. 얼마 전까지 ‘청사진’, ‘계획서’ 등으로 잘 써오다가 지금은 모두 ‘로드맵(road map)’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로드맵’은 ‘도로 지도’로 쓰이지 ‘청사진’, ‘계획서’의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널리 쓰이는 ‘커트 라인(cut line)’은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사진의 설명문’이라는 뜻으로 쓰이지 ‘합격선’이라는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하는 우리 식 외래어는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마라톤’이라고 하면 전혀 못 알아듣고 ‘매리턴’ 해야 알아들으니 우리나라에서 쓰는 외래어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도 없는 것이다.

    또 요즈음은 영어 약자를 너무 많이 쓴다. 얼마 전까지 ‘경영자’라고 잘 써 오다가 지금은 모두 ‘CEO’라고 한다. 또 좀 괜찮은 상점, 호텔, 아파트 등은 긴 영어 이름을 쓰고, 그것도 무슨 뜻인지 모를 이상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유식한 것, 고상한 것, 부귀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하는 모양인데, 더 천박해 보이고 더 비굴해 보인다.

    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외래어가 엄청나게 많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몇 년 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한국어외래어사전>이라는 책을 샀다. 중국인을 위해서 한국에서 쓰이는 외래어를 모아 중국어로는 어떤 단어로 대치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사전이었다. 그 사전에 실린 한국에서 쓰이는 외래어는 무려 7만5000단어였다.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성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가 4000개 정도라고 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외래어의 숫자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외래어를 많이 쓰면 영어 등 외국어를 잘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에서 쓰는 외래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등에서 쓰는 뜻과 달리 쓰는 것이 많고, 또 발음이 원래 발음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외래어를 많이 씀으로 해서 우리말을 파괴하고 우리 문화를 더욱 파괴할 뿐이다.

    *國 : 나라 국. *語 : 말씀 어.

    *汚 : 더러울 오. *染 : 물들일 염.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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