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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박기원 (6) 끝이 아닌 시작

  • 기사입력 : 2017-05-16 14: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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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는 못 속인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봄기운에 집집마다 입춘방을 붙였고 농사짓는 이들은 곡우를 앞두고 못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여느 계절보다 봄을 좋아한다. 제철을 알고 피어오르는 꽃도 좋지만 새로운 다짐으로 한해를 준비하는 분주함이 무엇보다 좋다. 올봄은 예년보다 더 따스했다. 따스한 봄바람에 이끌려 수습기자 과정을 시작했고 긴소매보다는 반소매가 어울리는 5월, 수습이란 이름표를 뗐다.

    돌아보면 좌충우돌이었다. 매일 아침 경찰서에서 마주한 당직자들은 무엇 하나 쉬이 알려주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는 집배원처럼 2층 기자실과 1층 형사과를 수도 없이 뛰어다니며 취재메모를 작성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풀어진 넥타이를 보며 당직자들은 조금씩 말문을 열어나갔다. 확신하고 의욕적으로 찾아간 취재 현장에서도 허탕을 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맘과 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 상황이 원망스러웠고, 뿜어져 나온 결과물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름대로 긍정할 수 있는 점은 이전보다 스스로 대담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장미 대선 표심을 잡기 위해 많은 후보가 경남을 방문했고, 나는 대선취재팀으로 후보를 뒤따랐다. 처음에는 말 꺼내기가 두려웠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낯은 두꺼워졌고 그들과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고 다른 언론사 기자보다 의미 있는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더 가까이 따라붙었다.

    나는 한 후보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졌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데서 왔노? 그건 와 알라고?"라는 답변과 함께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그들의 말을 빠르게 옮겨나갔다. 앞으로 어떤 취재원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나갈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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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습' 이름표를 떼는 일은 책임을 부여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쓴 기사들은 줄곧 선배들의 피드백을 받아왔지만, 수습이라는 이름표가 떨어진 이후에는 그 역시 내 몫이 된다. 시간에 떠밀리듯 흘러버린 수습 기간을 부여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후회는 먼저 오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앞으로는 내가 쓴 기사를 부여잡고 고개 숙여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수습 기간 3개월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변화'라 말하고 싶다. 3년 전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바라던 기자가 됐다. 목표를 손에 쥐었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변화하지 않으려는 나 자신에 실망을 느낀 적도 있다. 사회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눈앞에서 사라졌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내 수습 기간 동안 혼란스러웠던 세상만큼이나 이 소식을 접하는 국민의 마음 역시 착잡한 심경이었다고 생각했다. 혼란 속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기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수습 이름표'를 떼고 싶은 바람도 간절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다. 수습과정을 마쳤지만, 기사를 쓴다는 일이 여전히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기사 한줄 한줄이 맘처럼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한 선배님께서 조언했듯 두려운 상황을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 수습기자의 25시는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박 기자의 25시는 앞으로 계속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잘 못한 일은 크게 꾸짖어 주시고, 잘한 일은 칭찬해 주시길 바란다. 질타보다는 칭찬을 더 많이 듣기 위해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움직이는 기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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