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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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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땅 위에 엄마를 그려놓고- 이현우(시인)

  • 기사입력 : 2017-05-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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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어느 고아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했습니다. 땅 위에 엄마를 그려놓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무릎을 앞당겨 끌어안은 채 잠든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상상 속에서나마 어린이의 영혼이 엄마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앞으로 현실 속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저 애끓는 소망이 부디 아름답게 열매 맺기 바랍니다.

    인간의 원초적 정서는 7세 이전에 거의 완성된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엄마와 아이들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따로국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워킹맘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조차 웬일인지 자녀와 함께하는 엄마의 시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저 시기만큼은 반드시 아이들이 엄마의 품에서 사랑을 자각하며 커야 합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모성을 통해 인간애의 고귀함을 정서적으로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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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분유를 먹고 큰 아이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일 거라는 생각은 조사해 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여인의 가슴은 단순히 육아용이나 성적 대상이 아닙니다. 대가 없는 희생 즉 정신적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신의 선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젖먹이 어린애가 딸린 조선의 여인들은 당당하게 앞가슴을 풀어헤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가 아닌 모성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갈수록 사회가 포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나눔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약한 사람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희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일 테지만,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엄마의 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자란 탓도 있을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가정·학교·사회가 삼위일체 되어 우리의 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는 정서교육, 인성교육, 공동체를 위한 생활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인간이 인간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날이 저절로 찾아올 것입니다. 땅 위에 엄마를 그려놓고 상상의 품속에서 잠들지 않아도 사진 속의 외로운 아이는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를 따라가는 시베리아 유형길에서 이렇게 독백합니다. ‘식물을 키울 수 없는 흙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간도 이와 다름없이 사랑과 동정을 품을 줄 모르는 인간을 본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사랑과 동정의 요람인 엄마의 가슴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비록 엄마가 곁에 있어도 저런 모습으로 잠드는 자녀들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힘들겠지만, 엄마들이 한 걸음만 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면 분명히 세상은 지금보다 따뜻해지리라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그 어떤 영웅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침 이런 말이 떠오르는군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

    이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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