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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순장조- 이종훈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7-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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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석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구덩이 스무 개가 북두의 별자리 모양으로 자리 잡았다. 구덩이마다 돌뚜껑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꿇어앉아 있던 순장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대궐 쪽을 향해 두 번 절했다. 그리고 먼저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는다. 군사들이 석실의 돌뚜껑을 덮을 때 쇠나팔이 길게 울렸다.’ 소설가 김훈이 그의 소설 ‘현의 노래’에서 표현한 순장의 모습이다.

    ▼순장은 신분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풍습이다. 가야사에서 이런 풍습이 많이 보이는데, 죽은 지도자가 사후에도 지위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시녀 등을 같이 묻었다. 극단적인 인명경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순장된 1500년 전 가야 소녀의 인골이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복원 결과 키 152.3㎝, 허리 21.5인치에 불과한 16살 소녀이며, 실물 크기로 재현돼 ‘송현이’라고 불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 청와대 참모들을 ‘순장조’라고 한다. 순장조는 순장(殉葬)과 조(組)의 합성어이다. 통상적으로 순장조는 대선이나 총선 등 각종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한다. 대개 정권말기 때 ‘출마조’와 ‘순장조’로 나누는데 이명박 정부 때 이런 말들이 회자되곤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탄핵을 앞두고 누가 ‘순장조’를 자처하는지 주목받기도 했다.

    ▼참모는 대통령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이지만 대통령 개인을 위한 충성을 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용어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순장이라는 풍습은 주군을 위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다’고 주창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의 복원을 지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정권에서는 ‘순장자’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특정한 개인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는 평등시대에 맞지 않다.

    이종훈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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