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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낮음의 가치- 한상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06-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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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가다 보면 보도블록 틈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자주 본다. 흙 한 줌 없는 좁디좁은 틈 사이에 어떻게 민들레가 자라났을까 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가만히 바라보면 민들레가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허리가 휘어도 온 힘 다해 맑게 피운 꽃송이는 세상의 가치를 가짐과 덜 가짐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래서 나보다 덜 가졌으면 낮게 보는, 결코 높아질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 잣대와는 다르다. 인간의 눈으로 평가한다면 민들레는 그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지 모르나 자연 속에서 민들레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생명체이다. 만일 민들레가 없다면 우린 그 빈 자리를 크게 느낄지 모른다. 하얀 홀씨 면사포를 쓴 민들레가 바람에 홀씨를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새삼 아름다운 것이 꼭 화려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홀씨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에 이끌려 이 땅 어느 곳이든 가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다. 그곳이 설령 보도블록 틈 사이라 하더라도 민들레는 자신의 운명을 올곧게 받아들인다. 그저 순응하며 자신의 강한 생명력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가치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가치는 모두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음에 있는 것이다.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오직 1등과 성장을 위해, 높음의 가치가 비록 악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면 그뿐이었다. 경기에 이기면 그뿐이었다. 과정은 목표 달성을 위한 통과 절차일 뿐이라며 무시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소중한 낮음의 가치를 애써 외면했고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높음을 위해 자연을 훼손했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이기심을 배려와 이해인 척하며 상대를 속이려 들었다. 높아지면서 얻은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로 조금 가진 약자의 것을 빼앗고 억압하고 조롱했으며 나는 늘 강자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낮음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태어났을 때 낮음이었으므로. 약자였으므로. 늙어 육신이 약해지면 병이 들기에 서서히 몸과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환이며, 평등이고 큰 축복일지 모른다. 낮아짐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낮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낮음은 너무나 뒤늦은 낮음이 아닐까. 늦어서, 높음을 변화시키고 고치기엔 힘이 약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도 낮음에 가치를 부여하면 어떨까. 낮음 속에도 높음이 존재한다는 걸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언젠가 신문에서 본 한 줄의 글이 생각난다. 그 글에는 한국이 공동체의식이 매우 떨어지는 나라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의 나라들은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한국은 그 점수의 절반도 못 미쳐서 괜히 마음이 심란했다. 잘못 온 길을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도 아주 멀리 잘못 온 길을 돌아가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것이 이익이 아니고 손해일지라도 과감히 돌아가서, 새로움을 만들어야 하고 그 새로움은 낮음의 가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낮음의 가치가 모든 사회의 중심이 되고 그 중심 속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상식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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