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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심야영화 (1) 프롤로그

  • 기사입력 : 2017-06-20 16: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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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를 볼 땐 주로 심야영화를 본다. 콩나물마냥 부대끼지 않아도 되고, 뒷좌석 사람이 발로 ‘꽁꽁’할 일도 없어 만족스럽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원하는 자리가 비었으면 슬쩍 가 앉을 수 있는 꼼수도 매력적이다. 내가 심야에 영화관을 찾는 이유다.

    별 중요치 않은 얘기로 글을 시작해 봤다. 단지 살롱 이름이 ‘심야영화’여서 그랬다. 심야영화로 이름붙인 이유도 내가 심야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일 뿐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처럼 별다른 의미없이, 객관적 팩트가 아닌 주관적 느낌을 담아 도입부를 쓴 ‘이유’는 꽤 중요하다. 앞으로 여기에 게재될 글은 전부 그런 내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이야기는 다음부터 하고,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한 이유를 말하려 한다.

    1년 전 취업준비생 시절,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원없이 하면서 돈까지 주는 ‘기자’는 정말 좋은 직업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6년 8월 2일자 경남신문 2면 오른쪽 하단에 ‘제48기 수습기자 최종합격자’에 내 이름 석자가 올랐을 때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상과 현실 사이엔 늘 괴리가 있다’는 술집에서 꼰대선배들이나 할 법한 조언이 이렇게 딱 들어맞을 줄이야. 기자는 생각만큼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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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얘기지만, 기사는 내가 ‘느낀’ 바대로 쓸 수 없다. ‘팩트’를 써야 한다. 그 말은 팩트가 없으면 단 한 줄도 적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 한 줄 때문에 전화를 수차례하는 경우는 일반적이고, 꼬이는 날엔 수십통씩 하기도 한다. 핵심적인 단어 하나, 숫자 하나가 확인이 안 돼, 하루종일 고생한 기사를 그대로 접은 적도 있다. 팩트없인, 나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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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영하씨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 작가는 7년 만에 신작소설 ‘오직 두사람’을 내면서 ‘작가의 말’란에 이렇게 남겼다.

    “그 무렵(세월호 사건)의 나는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매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럼으로 쓰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는데 팩트와 근거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편집자가 그 발언의 근거를 물어왔다.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더니 그런 과감한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해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잘난 팩트의 세계를 떠나 근거없는 예감의 세계로 귀환했다”

    나는 김 작가처럼 일을 그만두진 못했다. 작가도 아닐 뿐더러, 아직 자동차 할부도 2년 이상 남았다. 허허, 그리고 기자는 글쓰는 즐거움과는 별개로 보람감이 있다. 팩트 피로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대신, ‘근거 없는 예감의 세계’로 귀환한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심야영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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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기자살롱-심야영화’는 날 위해 시작했다. 그래서 이곳이 앞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살롱이 될지, 나 홀로 답답함을 못 이겨 소리치는 대나무밭이 될진 잘 모르겠다. 전자면 독자, 회사, 그리고 나까지 모두 행복할 것이고, 후자여도 나는 만족할테니 걱정은 없다. 이래도 될런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앞으로 ‘심야영화’에선 내가 심야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스쳤던’ 생각을 자유롭게 ‘떠들’ 것이다. 엄밀한 분석과 정확한 팩트, 영화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이들은 관련 기사, 칼럼, 팟캐스트를 찾아보길 권한다. 나는 술자리 잡담처럼 팩트와 근거없이 시시껄렁한 내 느낌을 가감없이 전할 계획이다. 아마 영화에 대한 좋고 나쁨의 기준도 지극히 주관적일테니 감안해 주시고, 스포도 100% 있으니 부디 영화를 본 후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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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실은 1화를 쓰기 위해 기자살롱 마감 전날 급하게 영화 한 편을 봤다. 김명민, 변요환 주연의 ‘하루’였다. 영화를 본 후 마감에 쫓기던 나는 빅뱅의 ‘하루하루’가 생각났다. “파도처럼 부서진 내 맘, 바람처럼 흔들리는 내 맘... 한숨만 땅이 꺼지라 쉬죠~ 오오오” 첫날부터 스포를 하진 않겠지만 영화는 별로였다. 그래서 두 배우의 절실한 연기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노트북 앞에서 한없이 한숨만 쉬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컴퓨터 앞에 앉아 ‘1화’를 ‘delete’ 키로 지우고 ‘프롤로그’를 써 넣게 됐다. 이면에 이런 팩트가 숨어 있어 죄송할 따름이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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