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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음식일기 (1) 크리스피크림 도넛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 기사입력 : 2017-06-28 16: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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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는 음식에 대한 것이면서 추억에 대한 것이다. 대개 별 생각없이 하루에도 수많은 음식을 먹지만 가만 되짚어보면 그 음식에 얽힌 어떤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이곳에서는 내 기억 속에 조금 특별하게 남은 음식들을 소개한다. 읽은 후 자신의 기억 속에 특별했던 음식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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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피크림 로고.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이국적이고 세련되게 느껴졌던.

    1. 크리스피크림 도넛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달콤하고 촉촉한 '서울도나스'
     
    때는 2005년 3월. 대학 신입생이 돼서 처음 밟은 서울땅은 온통 신기한 것 천지였다. 학교 앞 지하철 2호선 신촌역 근처에 있던 크리스피크림 매장은 그 신기한 것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크리스피크림 도넛 매장은 전국에 딱 2개뿐이었다. 신촌에 하나, 명동 근처에 하나. 신촌 매장이 1호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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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의 빨간불. 갓구운 도넛이 나왔다는 신호.

    매장 통유리 벽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도넛 모양의 간판에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것은 갓 구운 도넛이 나왔다는 신호였다. 이때 매장에 들어가면 크리스피크림의 시그니처 메뉴인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공짜로 맛볼 수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면 달콤한 도넛 냄새가 진동했다.
     
    혼자였는지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였는지, 도넛을 처음 먹었을 때의 정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맛을 느꼈던 순간은 생생하다. 따끈따끈한 도넛을 한입 베어무는 순간 부드러운 빵이 위에 코팅된 설탕과 함께 입속에서 사르르 녹았던 기억. 그때까지 도넛이라곤 시장표 꽈배기와 던킨도너츠가 전부였던 나에게 그 맛은 가히 혁명적인 경험이었다. 아, 이렇게 달콤하고 촉촉한 도넛이라니! 도넛 맛에 반해 '역시 서울에 오길 잘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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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1더즌.

    어느날 도넛을 먹다가 문득 창원집에 갖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놀라운 신문물을 가족들에게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이었달까. 집에 내려가던 날 도넛 매장에 들렀다. 손에 짐이 많았지만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1더즌(12개)을 샀다. 2호선을 타고 3호선으로 갈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철역에 내린 후 터미널까지 낑낑대며 걸어가 버스 안에 도넛을 실었다. 하얀 바탕에 초록색 원이 점점이 그려진 도넛박스를 보니 괜히 설렜다. 서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갖고 간다는 뿌듯함이 넘쳤다. '먹어보면 완전 좋아하겠지?'
     
    늦은 저녁 창원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신문물을 소개했다. "엄마, 이거 무봐라. 이게 뭔지 아나. 이게 바로 서울도나스다, 서울도나스!". '서울도나스'를 처음 맛본 가족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도넛 12개는 사온 다음날 다 없어졌다. 그 뒤로도 집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매장에 들러 오리지널 1더즌을 샀다. 집에 가겠다고 전화를 하면 엄마가 먼저 주문을 하기도 했다. "올 때 도나스 사온나. 그 서울도나스". 집에 가는 고속버스 안에는 크리스피 크림 박스가 왕왕 보이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스피크림 매장은 점차 늘어났다. 서울 곳곳에 생겨나던 매장은 몇 년 뒤 부산에 등장했고 2010년에는 창원에도 생겼다. 자연스레 도넛을 사갈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됐다.
     
    최근 몇 년간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먹지 않았다. 엄마는 생각날 때마다 크리스피크림 매장을 들러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1더즌씩 사오곤 했는데 아빠도 동생도 따로 생활을 하게 되니 집에 먹을 사람이 없어져 도넛이 매번 남았다. 사온지 며칠이 지나자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도넛을 보며 엄마는 "이제 이거 안사야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한참을 안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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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15일을 끝으로 사라져버린 신촌1호점.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올라 찾아보니 신촌1호점이 지난 3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한국에 1호점으로 문을 연지 12년 3개월 만이란다. 모든게 신기했던 낯선 서울, 왠지 모를 이국적 분위기가 느껴졌던 학교 앞 매장의 커다란 녹색 간판, 함께 도넛을 먹었던 대학 친구들, 지하철을 갈아타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도넛을 운반해 집으로 갖고 갔던 기억, 도넛을 먹으면서 다같이 좋아하던 가족들. '서울도나스' 속에 담겨있던 추억이 문을 닫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못내 허전했다.
     
    오랜만에 크리스피크림 매장에 가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샀다. 한입 베어무니 익숙한 달콤함이 입안 가득 밀려온다. 씹을 때마다 도넛에 얽힌 추억들이 사르르 머릿속에 퍼져나간다. 추억의 1호점이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주는, 여전히 행복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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