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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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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기자의 여의도 한담] ‘내로남불’ 명명 원조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치권 ‘네 탓’ 공방 때마다 단골 키워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문 대통령 장관 임명 강행에 ‘회자’

  • 기사입력 : 2017-07-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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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0년 전 이맘때 한국 정치의 속살을 꼬집는 획기적 발언이 있었다.

    1996년 6월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세상에 이런 웃긴 이야기가 있다. 자기가 부동산을 사면 투자고 남이 사면 투기다. 자기의 여자관계는 로맨스고 남의 여자관계는 스캔들이다.”

    남해·하동 출신의 3선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신상발언을 이어갔다. 여소야대 정국에 따른 의원 영입을 비난하는 야당의 지적에 특유의 위트를 가미한 응수였다. 박 의원의 이날 ‘로맨스’ ‘스캔들’ 발언은 최근 정치권을 들썩이는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 ‘신조어 제조기’로 통하며 입담 좋기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인 박 의원의 이 말은 정치사에 두고두고 ‘아전인수’식 네 탓 공방을 비난하는 단골문구로 자리했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비유는 있었지만 박 의원이 정치권에 본격 뿌리를 내린 정도로 이해한다.

    그해 4월 11일 치른 15대 총선 결과 여당인 신한국당 139석, 새정치국민회의 79석, 자유민주연합 50석 등을 확보했다.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신한국당은 야당과 무소속 의원을 영입해 151석으로 늘렸다.

    이에 15대 국회 의장단 선출 안건이 상정된 이날 본회의는 ‘의원 빼가기’를 비난하는 야당 의원들의 성토와 여당의 반박이 이어졌다. 새정치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은 “남을 비판할 때는 가혹하고 자기는 그 비판에서 예외 되고….(중략) 이번 국회 파행의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책임은 139명으로 당선자가 확정된 신한국당 측이 그것을 그대로 인정을 해서 원 구성을 했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김영삼 대통령께서 열두 제자를 도입해 151명 만들었다”고 비꼬았다.

    결국 회의는 여야 간 설전만 주고받다가 오후 6시 30분께 정회, 10시를 넘겨 속개했으나 곧바로 산회했다.

    2017년 한국 정치판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노무현 정부 이후 9년여 만의 정권교체로 여야가 바뀐 정치권은 해묵은 폐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모두 네 탓 공방이다. 어제의 공격수는 수비수로, 수비수는 공격수로 포지션만 바뀌었을 뿐이다. 여당은 늘 그랬던 것처럼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 역할에만 충실한 모양새다. 야당은 책임질 것 없이 ‘물어뜯는 역할’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하루아침에 ‘딴 사람’이 된 정치인을 바라보는 국민만 어리둥절하다.

    새 정부가 내각 진용을 갖추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놓고 뒤바뀐 여야의 태도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인사청문 과정을 거치면서 새 정부가 출범하며 내건 ‘협치’는 물 건너갔고 ‘대치’가 자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3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표류하자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청문 과정에서 드러난 부적격 사유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존중돼야 하는데, 결국 밀어붙이기로 임명되니 청문제도가 어떤 의미가 있나 회의도 든다”고 따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불과 2년 만인 지난달 국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청와대는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참고토록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야당은 최근 인사청문회를 마친 김상곤 교육부·송영무 국방부·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와 아울러 청와대의 지명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임명도 밀어붙일지 관심이다.

    얼마 전 만난 ‘내로남불’ 명명 원조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대치정국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개헌을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 획기적인 권력구조 개편 없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게 20년 전 ‘내로남불’을 정치권 화두로 던진 노정객의 키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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