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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책 읽어주는 홍아 (1)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기사입력 : 2017-07-05 16: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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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하면서 : 20살이 되도록 국민 필독서라고 불리는 '삼국지', '어린왕자'도 읽지 않으며 무식을 뽐냈다. 그러다가 군대시절 독서의 묘미를 알게 됐다. 나무 그늘 아래 짱(?)박혀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고, 모든 행동이 속박된 곳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 역설적인 감정을 경험했다. 예비군도 끝나고 민방위에 편성된 지금 그런 자유를 잊어가다 일상의 짓눌림을 이기고자 다시 책을 펼친다.>

     
    춥고 덥고 짜증나고 피곤한 일상이 통째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실 모든 게 그대론데 나 하나 바뀜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도 사랑에 빠지고 우리가 사랑에 빠진다면 세상은 과연 그대로일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런 사랑을 다루는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도 이 소설은 설정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남자 주인공이 매우 못생긴 여자를 좋아한다는 설정에 있다. 박민규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단언컨대 인류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나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었다'고 밝히며 자기 소설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흡입력은 엄청나다.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들춰내며 작가만의 극복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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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지금 우리 사회를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 한다. 대학을 나와야 하고, 예뻐지기까지 해야 한다. 차를 사야하고, 집을 사야 한다. 이런 내가, 대학을 가는 순간 세상의 평균은 또 한 치 높아진다"고 덧붙인다. 이런 구조는 부와 권력은 주로 남성에게 몰려있고 여성의 경쟁력은 미모에 달려있는 세상에서 못생긴 여자 주인공의 삶을 가시밭길로 만든다.
     
    그럼 왜 이렇게 됐나. 소설은 그 원인으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든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나아가 또 다른 이유는 외모만 가꿔온 과거 관습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면은 제쳐두고 외관만 예쁜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바빴다. 소설은 이를 보고 삶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잘 살아보자고 모두가 노래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역시 삶이 아니라 생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소설은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 진화해 왔지만 그 힘을 얻는 자는 극소수이고 절대 다수가 보통 사람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절대 다수인 우리가 힘만 좇으면 결국 '삶'이 아닌 '생활'만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개인은 자아를 잊고, 첫눈에 승부가 판가름 나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소설에는 사회 고발성 내용과 더불어 놀랍도록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도 녹아있다. 그러면서 소설이 제시하는 부조리의 극복 방법은 사랑이다. 소설은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쓰고 있다. 확장해 보면 사랑이 만연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그럼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오해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 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설령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도, 그 오해를 믿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정신없이 다 읽었다. 책에는 보통의 힐링 서적보다 훨씬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 다 읽고도 한참을 멍하게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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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사랑에 빠져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고 치자. 그렇다면 누군가가 가벼운 접촉사고에 뒷목을 잡고 내리지 않고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다. 그 상대방은 '땡잡았다'는 생각대신 '역시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굳히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게 된다. 사랑도 전염된다.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선순환이다.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비현실이고픈 지금을 바꿀 한 걸음을 내딛어 본다. 나는 계속 '세상은 사랑이 넘치고 따뜻하다'고 오해하며 살겠다.

    조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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