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세상을 보며] 우리 동네 사거리 풍경- 이문재(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7-07-06 07:00:00
  •   
  • 메인이미지


    매일 출근길에 지나는 사거리 광장. 꽤나 넓고 복잡한 길이라 족히 1~2분은 신호가 풀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때 도로 옆 상가마다 입주해 있는 가게의 간판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다.

    옛날과는 달리 각각의 개성이 담긴 세련된 간판은, 단순히 가게를 알리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미술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작 눈여겨보는 것은 간판들의 흥망성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반짝거리던 녀석이 빛을 잃은 채 새 주인을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이미 수명을 다하고 반쯤 뜯겨나간 녀석도 있다. 물론 새 주인을 만나 꿈과 희망이 넘치는 의기양양하게 달린 녀석도 있다.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 반갑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하루가 멀다하고 주인이 바뀌는 녀석들을 마주하면 가슴이 찌릿하다. ‘대체 얼마를 털어먹었을까.’

    월급쟁이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연금 (개인연금 포함)으로 놀면서 생활하든지, 또는 자영업, 아니면 또다시 월급쟁이.

    다행히 형편이 좋아 부동산에 투자를 해둔 월급쟁이라면 꼬박꼬박 세를 받는 임대업 정도가 추가되겠지만, 아무튼 선택의 폭은 너무나 좁다.

    자영업을 선택하는 경우, 대부분 큰돈을 벌 욕심은 아니다. 할 일을 가지고, 직장 다닐 때의 수입 정도만 해도 대만족이다. 아니 절반만 돼도 다행이다.

    자신이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직장을 떠난 많은 초보 자영업자들은 이 범주에 들지 않을까.

    그런데 일견 이 같은 소박한 소망조차 이루기가 참 쉽지가 않다. 지난해 문을 닫은 자영업체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장사가 안 돼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국세청 집계로, 지난해 새로 창업한 사업자는 122만여명으로 전년보다 3.0%가 늘었다. 반면 폐업한 사업자는 90만여명으로 15% 증가했다. 하루 평균 3300여개의 가게가 문을 열었고, 2400여개 가게가 문을 닫은 꼴이다. 지난해 창업자는 2002년 123만여명, 폐업자 수는 2004년 96만여명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여파가 거세고, 베이비붐 세대들이 현직에서 대거 물러나면서다. 이들의 가세로 자영업자는 늘었지만, 경기 개선 조짐은 확실치 않고 일부 아이템은 포화 상태여서 폐업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차마 문을 닫지는 못한 채 가게를 운영하는, 사실상 개점휴업인 영세 점포주들도 증가세다.

    지난해 매출 과세표준 2400만원에 미치지 못해 부가가치세 납부 의무가 면제된 사업자가 126만여명에 달했다.

    월급쟁이들 술자리에서 흔히 오가는 얘기가 ‘확~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다.

    퇴직금에다 대출금, 모아둔 돈 똘똘 말아서 해보겠다는 계산이다. 열심히만 하면 밥 굶을 일은 없고, 잘만 하면 월급쟁이보다 낫지 않겠냐는 낭만적인 기대감도 깔려 있다. 물론 자영업을 한다고 다 힘들고 망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창업프로그램이나 지원을 적극 활용하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할 것이 국민 9명 중 1명,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라는 것. 또 국내 자영업자 비중이 적정수준보다 30~40% 초과한다는 사실이다. 용기와 꿈을 꺾으려는 얘기가 아니라, 길가의 간판들을 좀 오래 봤으면 해서다.

    이문재 (경제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문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