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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장을 멈출 수 없다- 공창석(매경안전환경원장·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 기사입력 : 2017-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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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강남좌파’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강남에 사는 부자가 자기보다 더 잘사는 부자를 시샘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사전을 찾아보면, 강남좌파는 몸은 고소득 상류층이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진보이념을 가진 부류를 지칭한다. 어쨌거나 그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사로잡힌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달러를 목전에 둔 OECD 국가다. 그러나 최근의 현실은 양극화 해소와 분배정의를 위해 기업과 부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은 자명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부자들로부터 재산을 환수해 분배하자는 주장이 드세고, 이를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러다가 3만~5만달러로의 성장 동력을 훼손시킴은 물론이고 이를 달성하려는 사회의지마저 망가뜨릴까 걱정된다. 과연 시장경제를 위축시키고, 대기업을 때려잡고, 고소득층을 쥐어짜는 것으로부터 고복지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복지 모범국가 스웨덴이 참고가 된다. 스웨덴은 비록 사회주의체제지만 완전한 시장경제를 구가한다. 심지어 기업 상속세조차 없다. 기업의 성장과 영속성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결국, 양극화를 해소하고 고복지사회를 이루려면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과 고소득자의 지속적인 증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왜 소득 2만달러의 우리나라에서 사뭇 잘사는 사람들이 중산층 이상을 자부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에 빠질까? 강남좌파처럼 부자를 시기하고 경원시하는 뿌리는 의외로 깊다.

    첫째는 우리 역사에 존중받는 부자가 거의 없다는 문제다. 더군다나 근세 조선시대에 와서 ‘사농공상’ 관념에 의해 상공업을 천시함으로써 이를 통한 축재는 백안시되었다. 때문에 존중받는 부자도 출현하지 않았다. ‘사농공상’의 관념은 오늘날 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듯싶다. 중국의 <신당서(新唐書)>에 신라가 부강하며 노비를 3000명이나 소유한 재상이 있다고 부러워하는 투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계의 주류는 신라는 한 사람을 위해 노비 3000명이 착취당하는 좋지 않은 나라라는 식으로 서술한다. 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기(史記)> 화식열전에는 노비를 1만명이나 소유한 자, 제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자가 수두룩하다. 진시황은 광산업으로 성공한 여성 거부 청(淸)을 제후처럼 대접했다. 신라의 부자는 이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다 하겠다.

    둘째는 기업의 역사가 매우 일천하다는 문제다. 이웃 중국과 일본에는 200년 이상 장수한 기업이 수천 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100년 된 기업을 손가락으로 세어야 한다. 그만큼 기업을 창업하고 부를 축적한 역사가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다운 기업과 부자다운 부자가 적고, 이들을 존중하는 풍토 역시 얇은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우리사회는 아직 기업과 부자가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바뀌어야 한다. 좋은 기업을 더 많이 만들고, 망하지 않고 영속되도록 하며, 부자가 이 땅에 넘쳐나도록 해야 한다. 2만달러의 복지와 5만달러의 복지는 차원이 다르다. 이웃 중국과 일본이 초강대국으로 고소득국가로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는 주저앉아 부러워만 해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에서 기업과 부자는 성장엔진과 같다. 모름지기 그들이 성장에 마음껏 매진토록 하는 것이 일자리를 늘리고, 고복지사회를 앞당기는 길이다.

    공창석 (매경안전환경원장, 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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