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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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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궁상- 강지현 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7-07-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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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구멍난 양말을 기워 신는다. 장을 봐야 할 땐 전단지를 펴놓고 어느 마트가 더 싼지부터 살핀다. 9900원짜리 셔츠 하나 살 때도 몇 번을 망설인다. 반찬 그릇에 묻어있는 양념이 아까워 밥을 비벼먹기도 한다. 혼술 (혼자 마시는 술)을 즐기고 혼영(혼자 보는 영화), 혼밥(혼자 먹는 밥)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남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궁상맞다고 타박한다.

    ▼어렵고 궁한 상태를 이르는 말 ‘궁상’. 이런 상황들이 ‘자발적 궁상’일 땐 상관없다.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궁상을 떨어야 할 때다. 지금의 청년들이 그렇다.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한 해 700만원에 육박한다. 학자금 대출이자를 연체하는 청춘의 숫자는 9만명. 이들은 어렵게 대학에 진학하고도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종일 알바를 뛴다. 한 달에 100만원씩 갚아도 꼬박 3년이 걸린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지만 청춘의 현실은 ‘궁상모드’다.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기 일쑤다. 막막한 학자금 상환, 기약없는 취업, 치솟는 집값. 희망은 사치다. 그래서 포기한다.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인간관계와 집, 심지어 꿈과 희망조차도. 더 이상 포기할 게 없어진 이들은 ‘헬조선’, ‘이생망’이라는 말로 자조한다. 지옥 같은 한국사회,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때론 조언이나 충고보다 공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요즘 TV 속 ‘궁상남녀’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어제 종영한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충우돌하는 청춘들을 그렸다. 코끝 찡해지는 대사에서 청춘들은 ‘나만 힘든 게 아니다’는 위로를 얻었다. 예능 ‘미운우리새끼’는 빚쟁이가 된 이상민의 궁상스런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처절하게 빚을 갚는 그를 보며 ‘연예인도 나와 다를 게 없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청춘들이여, 기 펴시라. 그리고 영화 ‘베테랑’ 속 대사를 떠올려보시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씩씩한 청춘에게 궁상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강지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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