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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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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감성을 채워가는 도서관- 박종순(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7-07-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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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부터 휴대폰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국민안전처에서 폭염 경보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다. “최고 35도 이상, 야외 활동 자제” 등의 정보를 전한다. 화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여름휴가를 앞두고 어떤 일정으로 일상을 벗어나 볼까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 추억도 쌓고 풍요로운 마음도 쟁일 방법이 없을까? 그러다 생각이 머문 곳이 바로 도서관과 서점.

    여행을 하다 문득 들어선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호강하고 힐링을 하며 마음이 꽉 차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아직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에 앉아 책 읽고 시험공부하던 도서관을 떠올리진 않으리라. 이렇게 지루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도서관은 이제 옛말이다. 복합문화공간에 완벽한 쉼터로 진화하고 있는 도서관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추억과 인연을 선물하고 다양한 공연이 있는 곳, 창작의 고통을 이겨낸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곳, 꿈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는 곳이기도 한 도서관을 검색하여 찾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여름에 필자는 지역의 도서관들을 찾아 떠나볼 참이다. 지난봄에 일본 그림책 작가와 동행했던 순천의 그림책도서관이 다시 찾고 싶은 첫 번째 쉼터다. 원도심 인구 감소로 이용률이 저조해진 기존의 시립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그림책만으로 운영되는 도서관. 그림책 원화를 전시하는 멋진 갤러리가 있고, 고급스러운 프로그램으로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즐기는 곳이다. 이름 있는 작가들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현재까지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갈 만큼 순천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독자 스스로 해석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이 도시의 브랜드까지 높여주는 공간을 만들어낸 셈이다. 인구 5만명인 일본 사가현에 있는 다케오시에서도 시립도서관을 리뉴얼하면서 연간 100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지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으로 인한 지역 경제 기여 효과만 연간 200억원이라고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 책이 시골 마을까지 살아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소도시에서 지역 도서관에 이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몇 해 전 파리 여행 중에는 생각지 않았던 방문으로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노트르담 성당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조그마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녹색 배경의 소박한 멋스러움을 간직한 서점이다. 1950년대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도 운영 중인 이 서점은 작가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의 한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이 지금 그곳에 없는데도 그곳의 공기를 마시며 그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웠던가. 사방이 책으로 가득하여 두 명이 마주 서기도 힘들만치 비좁은데도 잠시 멈추어 한가로이 책을 보기도 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재워주기도 했다는 그곳의 스토리를 공유했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도서관을 기획하고,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서점을 갖는 것은 삶을 바꿔줄 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단순히 시민들의 의식과 취향을 건드리는 수준을 넘어 예술이라는 견고한 틀 속에 시대적 이슈를 담아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스토리를 공유하며 더 있고 싶게 만들고, 그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줄, 그래서 마음껏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 말이다. 책을 ‘고르고’ 공간을 ‘즐긴’ 경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박종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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