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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웨딩다이어리 (5) 예식장- 고작 몇시간

  • 기사입력 : 2017-07-18 16: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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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년 전이었다. 한날 회사에서 ‘츤데레’를 맡고 있는(?) 한 남자선배가 미혼남녀 후배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결혼할 무렵을 떠올리며 말했다.

    “신부가 하고 싶어하는 걸로 다 하면 돼. 싸울 필요가 없어. 그거 차이가 많이 나봤자 100만원이야. 지나고 보면 ‘그게 뭐라고 싸웠노’ 할 일이라고.”

    그 말대로 그도 그렇게 했는지는 확인 불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나도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무조건 비싼 것’만 선호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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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청개구리 같아서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고 싶어하더라는 것이다.

    반대로 맘대로 하라고 하면 하나둘 눈치를 보기 마련이었다. 그러고서는 꼭 필요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곤 했다.

    나도 그랬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었고, 딱히 말하지 않을 때 눈치가 보였다.

    다행히도 곰대리는 마음이 바다 같았다. 웨딩플래너와 드레스와 메이크업, 식장을 고르는 자리에서 그가 뱉은 말은 몇년 전 그 선배를 떠올리게 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해. 한 번 하는 건데 뭐.”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남자, 나를 너무 간파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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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잘 모르겠고, 식장에 대해서는 줄곧 가져오던 로망이 있었다.

    버진로드(virgin road)가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조금 짜다. (모든 예신이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을까? 나한테는 그게 식장의 분위기였다.)

    고작 몇시간만 입을 드레스가 대여에만 100만원대를 호가하지 않나. 비싼 돈을 주고 입은 예쁜 옷을 오~~~래 보여주고 싶었다. 버진로드가 길면 우선은 오래 걸어야 하니까 평생 다시 없을 순백의 예쁜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곰대리는 크게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우리는 이전부터 야외 결혼식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고, 평범한 결혼을 얘기해왔다.)

    플래너는 내 말을 듣더니 내가 원하는 모습의 예식장 리스트를 뽑아 사진과 함께 보여줬다. 리스트 속 사진에서 마음에 드는 곳들을 추리자 플래너는 우리가 가능한 날짜에 예식이 있는지 알아본 후 방문 예약을 잡아줬다.

    식장을 알아보니 예전에 지은 예식홀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꽤나 긴 버진로드를 갖고 있었다.

    특히 전문 예식홀이 아니라 컨벤션 겸용 공간, 그리고 호텔이 보다 나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공간을 자랑했다.

    하지만 길다고 장땡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공간이 길면 넓었다. 우리가 예상하는 하객 수로는 공간을 메울 수 없었다. 플래너도 ‘헐빈해 보이는 것보다는 좁아보이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웨딩홀도 적정수의 하객이 앉고 적정수는 서있는 것을 계산해 평균인원을 잡는다고 했다.(보통 A예식장에 200명이 들어간다고 하면 100명은 앉고 100명은 서서 공간을 채우는 격이었다.)

    무엇보다도 홀이 길고 층고가 높을 수록 비쌌다. 결국은 긴 버진로드를 원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현실과 타협했다.


    ‘고작 몇시간만 있을 공간이니까. 이게 맞아.’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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