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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밥하는 아줌마와 글 쓰는 여자- 서영훈(부국장대우 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07-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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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에 아주머니가 있다.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나 형의 아내. 손위 처남의 아내, 또는 같은 항렬의 형뻘인 사람의 아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 아주머니다. 이때의 아주머니는 친인척 관계의 사람이다. 이런 혈연 관계는 아니더라도,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아주머니라 이르거나 부르기도 한다.

    아주머니의 낮춤말이 아줌마다. 그런데 이 아줌마라는 말은 오로지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를 때의 아주머니이다. 친인척 관계의 아주머니를 이렇게 낮춰 이르거나 부르지는 않는다. 아줌마는 그만큼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은 아니다.

    이언주 국민의당 국회의원이 말한 ‘밥하는 아줌마’는 당연히 남남끼리에서 통하는 그 아주머니다. 여기에서 밥하는 아줌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중 급식 조리종사원이다. 급식소에서 조리를 담당하고 있으니 밥하는 아줌마라고 해서 두 단어의 쓰임새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전적으로는 아줌마가 아주머니의 낮춤말이기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남끼리에선 아주머니 대신 아줌마라고 부르고 있기에 그렇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그리 젊지 않은 여성에게 흔히들 아줌마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나 비하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는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그냥 ‘밥하는 아줌마들’이 아니라,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했다. ‘그냥’도 모자라 ‘동네’까지 갖다붙였다. 하찮은 그 무엇이라는 어투다. 실제 이 의원은 이 말 뒤에 “별게 아니다.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냐”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이 의원이 아줌마라고 했을 때의 그 아줌마는 일반적으로 남남끼리에서 부르는 아주머니가 아니라, 아주머니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이 의원은 발언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사적인 대화지만 그로 인해 상처 입은 노동자가 있다면 유감”이라고 사과했다. ‘사적인 대화’였다고 하면 말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터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기자와 가진 전화 인터뷰가 사적인 대화일 리 만무하며, 온전히 사적인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점심을 지어주는 여성노동자들을 ‘밥하는 그냥 동네 아줌마’라며 별게 아닌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적 대화니 사적 대화니 하며 구분 짓는 것은 결국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밥하는 아줌마’인데, 한 표라도 아쉬운 선거 때에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의 아들딸들이 학교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 지어주는 점심을 먹으며 공부를 하고, 의원 자신은 국회의 의원회관이나 국회 밖 음식점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 내놓는 밥을 먹고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회의원들은 밥하는 수고로움을 덜고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밥하는 아줌마나 국회의원이나 모두 이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밥한다고 비천하고, 책 읽고 글 쓴다고 존귀한 게 아니다.

    경상도에서는 남남끼리든 친인척 간이든 아주머니를 아지매라고 한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을 부를 때, 내뱉듯이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리듬감 살려 “아~지매”라고 해보자.

    서영훈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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