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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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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뉴질랜드의 밤낚시

까맣게 빛나던 그밤, 하늘과 바다와 별과 나

  • 기사입력 : 2017-07-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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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도 별이 예쁜 밤이었다. 토마토 농장에서 일과가 끝나면 하는 일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지만 그냥 앉아서 밤하늘에 선명히 뜬 구름들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다가올 여행지에 대한 가이드북을 읽고 상상하며, 아는 것도 없었지만 내가 겪게 될 착오들을 계획하는 것이 좋았다.

    별 다를 것 없이 같은 하루일 것 같았던 뉴질랜드 오클랜드, 차로 한 시간은 떨어진 어느 토마토 농장, 이제 조금 친해져 형·동생이라 부르던 농장 주인 아들이 내게 물었다.

    “형, 오늘 밤에 제 친구들이랑 밤낚시하러 가실래요?”


    ‘밤낚시.’ 마산이라는 바다를 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단 한 가지 해 본 적 없는 것이 밤낚시인데 이 먼 곳 뉴질랜드까지 와서. 아마도 나는 밤낚시를 분명 싫어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밤마다 남자애들이랑 밤낚시를 다니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하지만 밤낚시라는 단어와 나의 관계는 차치하고 앞서 말했듯이 딱히 농장일이 끝난 밤에는 할 수도 갈 수도 있는 곳이 없는 터라 냉큼 알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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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다가스카르의 밤. 인공조명 없이도 세상은 달빛만으로 빛난다.



    30분이나 기다렸을까. 지프이기도 픽업트럭 같은 차가 도착했다. 농장 주인의 아들 친구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했다. 이미 안면이 있기도 했거니와 한두 살 많은 형이라는 한국식 계급 문화 덕에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던 아이들과 짧은 인사를 한 후 출발했다.

    내 생에 첫 밤낚시. 가로등이 없는 길이었다. 한참을 갔지만 얼마나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는 길이었다. 가뜩이나 운전대를 잡으면 모험이 시작되는 길치라 보였어도 알지 못할 그런 나였었다.

    차가 섰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바닷가가 아니었다. 미국 공포영화 ‘지퍼스크리퍼스’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수수밭이었다. 아이들은 ‘여기 맞아?’라며 수근거렸고 옆에 있던 나는 ‘그럼 그렇지 여기가 아니지’라 생각하는 찰나 누군가 하나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함께 ‘이 자리가 맞다’고 외친 후 차는 옥수수밭을 밟아 직진, 정확하게는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별 생각없이 친목 도모 정도로 여겼던 뉴질랜드 어느 시골 동네에서의 밤낚시가 기대되기 시작한 것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이 거친 창밖의 숲이 지나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눈과 귀가 달리던, 길도 아니었던 그곳부터였다. 무엇에 부딪히는지 무엇을 밟는지 계속 척척거리는 소리가 빨라지는 만큼 내 가슴도 뛰었다. 공포영화였던 그곳은 이내 델마와 루이스의 부르짖음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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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바흐다르의 흔들리는 밤 풍경.



    차는 멈췄다. 눈앞에는 까만 바다였다. 차 이외의 모든 것은 까만 바다였다. ‘블랙샌드비치(Black Sand Beach)’ 백사장마저 검은색이라 그렇게 부르는 곳이라고 했다. 빛은 달빛과 남반구에서 비추는 별빛 그리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다였다. 검은 모래사장과 바다의 경계,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검은 물이 넘실거리느냐, 아니냐만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분주하게 낚싯대를 준비하고 앉을 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이 짧게 흐르고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그 순간 주변이 밝아졌다.

    어떤 인공적인 조명도 없던 그곳이 밝아졌다. 시각으로 구분해야 하는 모든 경계는 명확해졌다. 가장 인상 깊은 경계는 저 바다 너머 보이는 오클랜드 도시의 불빛들과 바다의 경계였다. 처음으로 눈으로 확인해본 ‘가시거리’는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그런 단단한 단어가 아니었다. 참으로 황홀한 표현임을 그날 알았다.

    ‘아오테아로아!’(Aote Aroa) 긴 구름의 나라, 예쁜 하늘의 나라 등등의 뉴질랜드가 가진 별명들이 스쳐지나갔다. 환경이 환경대로 존중받아 맑은 하늘을 유지할 수 있어 밤하늘마저 밝을 수밖에 없는 곳. 그 오랜 역사 속에 환경을 해하는 문명이 별로 발전하지 않았을 때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되는 풍경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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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마다가스카르에서 찍은 작품.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인상 깊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하나가 바닷가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불빛보다도 밝았던 밤낚시 장면이었다. 고기를 얼마나 잡느냐는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과 그때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도 지금 생각이 나지 않고 그때 자리에 있던 현지 아이들의 이름도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시꺼멓게 출렁이는 바다와 흑사장과 거짓말처럼 밝은 오리온자리의 별, 검지만 검지 않은 하늘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그 시간 나는 바다와 별과 하늘과 나만이 그곳에 존재했었다.

    30여개 나라를 다녀와 지금도 이 자리에서 글을 쓰는 내가 시작된 곳은 그 단 한 장면이었다. 나는 지금도 밤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의 밤낚시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내 생의 첫 밤낚시였으면서 찬란한 밤이었던 그 시간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 후 10여년이 더 지나는 동안 다른 의미로 나는 밤낚시를 가 본 적이 없다.

    뉴질랜드로 첫 배낭여행을 떠나게 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이 시작되고 그곳이 뉴질랜드였던 이유도 복잡스럽지 않았고 내가 지금도 어디로든 여행을 꿈꾸는 여행가가 되어버린 것도 단 한 장면, 그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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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다가스카르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숙소. 그 위에 뜬 별.



    밀레니엄과 함께 지구 종말론의 거품이 아직도 빠지지 않았던 2000년대였다. 영어로 한 문장을 만들어 대화하는 것은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문장만이 여전히 습관적으로 떠오르던 그런 나이였다. 10여년이 지나 2017년 지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풀어놓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장 먼저 써야 하는 이야기는 내 생에 첫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의 딱 한 장면임을 나는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그날도 별이 예쁜 밤이었다. 별 다를 것 없이 같은 하루일 것 같았던 내 생에 첫 밤낚시 그때부터였다. 그곳부터였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30여개 나라를 다녀와 지금 이 자리에서 글을 쓰는 내가 시작된 곳은.


    ◇뉴질랜드에 다녀오면서 당시 카메라를 잃어버렸던 터라 뉴질랜드 사진은 하나도 없다. 추후 어울릴 만한 타국의 사진들을 자료로 썼다. 첫 인사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문구로 마무리한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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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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