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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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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18년째 독거노인·청소년 돕는 설미정 꽃들에게 희망을 대표

“시민들 정성 담긴 쌀 모아 꽃들에게 희망 퍼드립니다”
대학원서 사회복지학 공부하며
아이들 먹을 반찬 나눠주기 시작

  • 기사입력 : 2017-07-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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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 밥이겠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여러 이유로 이 당연한 ‘행위’조차 쉽게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먹고살 만해서, 아니면 내 것을 남과 나누기에는 먹고살 만하지 못해서, 우리는 주위에 있는 이들을 어쩌면 못본 체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흔하지는 않지만, 이들을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지역의 이웃들을 돕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설미정(48) 비영리민간봉사단체 ‘꽃들에게 희망을’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꽃들’의 ‘희망지기’로 불리는 설 대표는 주위의 도움을 모아 지난 1999년 12월부터 햇수로 19년째 저소득층 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밑반찬과 쌀을 전하고 있다.

    “오셔서 쌀 좀 나르고 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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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미정 ‘꽃들에게 희망을’ 대표가 후원자들이 보내온 쌀들을 사랑의 쌀독에 담고 있다./성승건 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오전 창원 사파민원센터 2층 ‘꽃들’의 보금자리에서 만난 설 대표는 분주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나눠드릴 쌀을 나눠 담는 일이 한창이었다. 그의 곁에는 20㎏짜리 쌀 세 포대가 들어가는 파란 플라스틱 쌀독과 바가지, 각기 다른 곳에서 모인 쌀 160㎏가량이 놓여 있었다. 쌀을 뜯어 쌀독에 한데 모아 다시 봉지에 나눠 담고, 또 담고 모으는 일련의 과정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진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허리도 아파 오지만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한 달치 끼니라 생각하니 고생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각지에서 각자의 형편껏 보내온 쌀을 한데 모아 한 달에 80여 분의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는 일이 쉼없이 매일 이뤄진다. 대상자는 사회복지상담소 복지사나 지역 통장, 각 단체들의 추천을 받은, 기초수급자가 아닌 저소득층 어르신들이다.

    “어림잡아 1년에 10t의 쌀이 모여 어르신들에게 전해집니다.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함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쌀에 살이 붙었죠.” 10년째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사파초등학교 학생들, ‘생일이라 기뻐서’ 쌀을 보내는 사람들, 직접 농사 지은 쌀을 흔쾌히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사람들…. 여기에 이름도 알리지 않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쌀도 있다. 고마운 이들을 손으로 꼽는 설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는 10여년 전 ‘나도 쌀 냈는데!’ 했던 초등학생이 고등학생·대학생이 돼 나눔봉사자로 돌아왔을 때를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도 꼽는다. ‘꽃들’이 매개가 돼 나눔이 생활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늘어가는 기쁨을 그는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은 때론 예상치 않았던 뜻밖의 일에 결정되기도 한다. 18년째 이어지고 있는 설 대표의 희망지기 활동, 그 시작도 우연한 한 만남이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였어요. 조손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한 아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공부를 가르쳤죠. 한번은 저의 집에 데려와서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줬는데,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도 작고 마른 초등학생이 너무 많이 먹는 거예요. 지켜보던 어머니와 제가 많이 짠했어요.”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이 그렇게 ‘꽃들에게 희망을’을 만들었다. 그는 뜻을 같이한 주변 사람들과 ‘우리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하며 궁리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또래 아이들이 잘 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반찬을 만들어서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꽃들’의 씨앗은 지역에 차츰 퍼져나가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경남장애청소년문화교육진흥센터에서 운영하는 ‘행복밥상 벗바리’,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창원YMCA, 사파마을도서관, 대방평생교육센터를 비롯한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씨앗을 틔운 덕분에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건강한 공동체는 안에서 자그마하게 생겨나는 것”이라는 ‘건강한 공동체’ 확산 현상이다. 15명이 뜻을 모아 2가구 6명에게 반찬을 해주던 것이 지금은 참여자가 2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80여명에게 제철 과일과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제대로 된’ 밑반찬과 쌀로 전해지게 됐다.

    그는 욕심도 많다.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다양한 욕심을 만들어 냈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 연대, 연결, 희망 같은 단어들이 그를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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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미정 대표가 쌀을 나누고 있다 .



    지금은 서지 않는 팔룡5일장에서 해마다 김장담그기 봉사를 했고, 시민들의 작은 힘을 모아 만든 상남영화제작소의 영화 ‘오장군의 발톱’에서는 제작자로 기둥 역할을 도맡았다. 경남도립미술관과는 관람객들로부터 영화 관람료 대신 라면을 받아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함께라면 영화제’를 같이 해오고 있다. ‘꽃들’ 봉사자들의 자녀들과는 방학을 이용해 해마다 일 년에 두 번씩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달 말에는 31박 33일 일정으로 유럽으로 떠날 참이다.

    욕심의 목록에 올해 하나를 더 추가했다. 청소년들을 위해 만드는 ‘거리의 밥차’다. 말 그대로 청소년들을 위해 밥을 해서 거리에서 나눠주는 차다. ‘뱃속이 든든해야 더 활기차게 싸돌아다닐 수 있어서’라는 게 밥차를 만드는 이유다. 인스턴트로 망가진 가출청소년의 영양 불균형도 맞추자는 생각에 제철 과일도 함께 나눠줄 생각이란다. 여느 때처럼 뜻을 같이하는 활동가들이 이번에도 힘을 모았고, 한국GM 한마음재단이 차량을 기증했다. 후속 작업이 속속 진행된다면 다음 달부터는 창원 상남동과 합성동에서 “얘들아, 밥먹자”는 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다.

    “알아주면 고맙고,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하는 거죠.” ‘설 대표의 나눔봉사로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느냐’는 우문에 돌아온 현답이다.

    우리는 밥을 먹고 산다. 밥을 먹고 사는 이 행위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당연한 권리다. 주위의 도움을 모아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밥벌이를 하는 ‘꽃들에게 희망을’. 이 꽃들에게 희망이 계속 따르기를.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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