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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갑(甲)질- 이상권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7-07-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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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사헌부는 오늘날 검찰이다. 임금도 월권하면 탄핵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태종 3년 궁궐문을 지키는 갑사(甲士)들이 사헌부 관리를 집단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사헌부 관리가 “갑사의 직책이 낮고 천하니, 어찌 세음자제(世蔭子弟)가 할 일이냐”고 희롱한 데서 비롯했다. 사헌부 조사는 갑사들만 처벌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갑사 500여명이 신문고를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태종이 나서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명하면서 일단락됐다.

    ▼동서고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손바닥만 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약자에게 부당한 행위를 저지르는 나쁜 역사의 뿌리는 깊다. 아전(衙前)은 조선 시대 관청의 하급 관리다. 수령을 보좌해 세금 징수나 소송 업무를 처리했다. 이에 아전의 처분에 따라 세금과 군역의 경중이 매겨졌다. 미관말직이나마 권한을 십분 활용해 세금을 빼돌리고 뇌물을 챙기는 등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백성은 등골이 휘고 피눈물을 쏟았다.

    ▼갑(甲)과 을(乙)은 계약서상의 계약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용어다. 하지만 갑을관계는 갈수록 지위의 상대적 높낮이나 주종을 의미하는 쪽으로 그 개념이 확대됐다.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부당한 처우를 ‘갑질’이라 비꼬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오랜 시간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봉건적 수직 가치관에다 자본주의 산물로 들어온 서구 계약 문화가 접목하면서 물질적 차등이 곧 인격과 가치의 불균형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자리했다.

    ▼얼마 전 유명 제약회사 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도내 식품회사 회장도 운전기사에게 폭언·폭행을 일삼다 체면을 구겼다. 물질적 풍요를 무기로 행하는 온갖 횡포가 쉼 없이 불거지고 있다. 안하무인은 왜곡된 특권의식에서 비롯한다. 부나 지위가 인격의 우월성까지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이다. ‘특권은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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