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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2 (3) 윤선도/오우가(五友歌)

  • 기사입력 : 2017-07-21 15: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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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브레멘 음악대'라고 있잖아요?
     아시죠? 그림 형제가 쓴 독일 전래동화.
     주인에게 버림 받은 늙은 당나귀가 유랑악단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브레멘을 향해 떠나는…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아름다운 그 이야기 말이에요.
     당나귀는 홀로 떠나는 방랑의 길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고양이, 닭, 개를 차례차례 만나게 되잖아요.
     기억 나시죠?
     
     당신은 벽을 등지고 있었고, 나는 벽을 정면에 두고 있었으니
     아마도 그건 나만이 볼 수 있는 그림이었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 들어간 커피숍 벽에는
     당나귀와 고양이와 닭과 개가 그려져 있었어요.
     그 많은 동물들이 어떻게 한 그림 안에 전부 들어가냐고요?
     가능해요.
     당나귀 등에 개가 올라서고,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닭… 이런 식으로.
     맞아요, '브레멘 음악대'였죠.

     
    메인이미지
     
     그날 당신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죠.
     방송통신대에 차를 대고 조금 걸었습니다.
     여름 오후였지만 장마를 만난 하늘은 무척 흐렸어요.
     넓지도 않은 공원 곳곳에는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뒤뚱대며 먹이를 찾는 비둘기들이 있었고
     그것들 가운데 당신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공원 한가운데 우뚝 선 비석 앞에 서서
     그 곳에 쓰인 뭔가를 유심히 읽고 있었어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여가면서요.
     내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쳤고, 당신은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날 나는 차가운 커피를, 당신은 뜨거운 커피를 시켰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두 잔의 커피, 그것이 이루는 온도차가
     당신과 내가 걸어온 길, 그 길을 지나며 겪어야만 했던 크고작은 사건들,
     그리고 각자가 당면하게 될 이 시대의 간극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당신은 1954년 생.
     대학시절 내내 노동운동에 몸담았고 시민항쟁의 주동자로 몰려 옥살이를 했었죠.
     하지만 민주화 이후 당신은 경직되고 특권화 되어버린 진보진영을 비판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목숨걸고 함께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동지들에게 '변절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를 테면 '진보진영은 북한의 인권 법안을 지지하면 안 되는 것인가?'
     '임금 평준화에 관심없는 노조나 폐지 줍는 노인을 외면하는 전교조가 어떻게 좌파가 될 수 있나?' 등의… 위험천만한 발언들 말이에요.
     이러한 언사들 때문에 당신은 보수언론에 곧잘 인용됐고,
     당신의 일부 옛 동지들은 당신을 회색분자로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았죠.
     
     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1985년 생.
     3살 무렵엔 진귀한 외국산 장난감과 이유식을 접하며 88올림픽 특수를 누렸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외환위기가 어떤 식으로 중산층을 몰락시키는지를 똑똑히 목도했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와중에 대학을 졸업했고 일자리 구하기가 지상목표였던 동지들,
     결혼이나 육아보다 힙한 카페와 배낭여행을 선호하는 동지들과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글쎄요, 어른들은 저더러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고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변절했다'라는 말을 들을만한 확고한 가치를 지니기는 했는지,
     가끔 이상한 자괴감과 고립감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나의 생각의 틀은 모택동 사상, 레닌주의, 마르크스주의, 페이비언 사회주의, 루스벨트의 뉴딜 진보주의를 거쳐왔다고 느낀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의 사상은 유라시아의 베이징·모스크바·베를린을 거쳐 도버 해협을 건너서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이제 태평양을 건너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야 한국을 어슴푸레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베를린까지는 대다수 옛 동지들과 함께 갔다. 그러나 도버해협을 건널 때는 옛 동지 가운데 몇 사람만 함께 바다로 갔다. 마침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갈 때는 거의 나 혼자였다. 대서양은 너무 넓어서, 흡사 콜럼버스의 배처럼 사람들이 잘 타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이 지나온 40여년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의 책에요.
     다른 좋은 구절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이 독백처럼 적은 이 문구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적어도 나에겐 저 문장이,
     '같이 길을 가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 계속 가보기로 결정을 봤다'는 선언 같이 들렸거든요.
     그럼요.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평생을 떠난 적이 없는 노동이니 민주화니 하는 일들에
     마치 '계곡에 손발을 담그듯' 살짝 몸을 담고 곧바로 달아났던 약삭빠른 지식인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요.
     S는 그때의 이력을 자랑삼아 온갖 TV쇼에 단골로 등장해 입담을 자랑하고
     J는 그 시절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잘 꾸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모했습니다.
     M은 지자체의 수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이 되어 성공한 정치인으로 회자되죠,
     물론 그가 잠깐 학생운동을 했다는 건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백그라운드가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누굴 탓하거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커피숍을 나온 뒤 다시 마로니에 공원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신은 혜화역으로, 나는 방송통신대 쪽으로 가야했거든요.
     헤어질 땐 만날 때와 달리 당신이 제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힘내라는 말이었겠죠.
     그래서 나는 씩 웃어보였습니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나는 당신이 떠난 뒤에도 공원에 조금더 머물렀습니다.
     당신이 역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당신이 나를 기다리며 보고 서 있었던 비석이 무엇이었을까,
     거기엔 무슨 말이 적혀 있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거든요.
     
     그것은… 시비(詩碑)였어요.
     그 커다란 돌에 적힌 긴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는 1587년 마로니에 공원 인근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으로 남인(南人)에 속해 있어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고,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라
     서인(西人)에게 집중 공격을 받아 20년이 넘도록 귀양생활을 해야했다.
     오우가(五友歌:다섯명의 친구들에 대해 노래하다)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많은지라
     좋고도 그칠 때가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과 서리를 모르느냐
     땅속깊이 뿌리가 곧을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한 것 또 있겠는가
     보고도 말이 없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윤선도(尹善道·1587∼1671)/오우가(五友歌)
     

     그런데 그거 아세요?
     '브레멘 음악대'의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 닭은 함께 지낼 거처를 찾아헤메다
     어느 허름한 농가를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엔 이미 도둑이 숨어들어 있었죠.
     당나귀와 친구들은 고심 끝에 도둑을 몰아낼 꾀를 내요.
     힘을 합쳐보자, 우리들 각각은 약하지만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면서.
     당나귀 등에 개가 올라서고,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닭…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적층구조의 대오를 짠 뒤 동시에 꽥,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 듣는 괴음과 처음 보는 괴이한 형상에 놀란 도둑은 줄행랑을 치고,
     농가는 '브레멘 음악대'의 본거지가 되잖아요?
     이것이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아름다운 그 동화의 끝이에요.
     
     하지만 말이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브레멘 음악대'는 어떻게 해체 되었을까.
     모이면 흩어지는 것이 이치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있는 힘껏 함께 소리를 질렀지만
     마침내 소리 질러 내쫓을 도둑이 사라지면
     모두가 '변절'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요.
     대체 무엇이 '변절'이고, 무엇이 '변절'이 아닐까요.
     유랑이 끝나면 누군가는 브레멘을 떠나 베를린에 머물기도 하고
     누군가는 베이징에 남기도 하고
     누군가는 영국에 터를 잡기도 하고
     누군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요?
     또 어떤 누군가는 유랑의 기억을 우려내고 쥐어짜
     지위나 목숨을 연명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평생에 한번은 동지들과 연대하는 기쁨,
     함께 꿈꾸면 불가능이 가능이 되기도 하는 가슴 벅찬 기쁨을 만끽 했었잖아요?
     그러니 당신은 저보다 훨씬 좋은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좋은 세상에 태어나 더 좋은 세상을 꿈꿨던 당신,
     그리고 여전히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
     당신을 응원할게요.
     당신도 저를 응원해주세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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