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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희생자의 서사- 황현산(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7-07-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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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서정시의 걸작 가운데는 그 짧은 형식 안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들이 많다. 물론 그 이야기는 압축되고 생략되어 있으며,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그만큼 커지기도 한다.

    가까운 데서 예를 들자면, 이용악이 식민지시대에 썼던 시 ‘강가’는 여덟 줄의 시 속에, 아들이 감옥에 잡혀 있는 한 늙은이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 네 줄로 그 이야기의 깊이를 만든다. “그 늙은인/암소 따라 조밭 저쪽으로 사라지고/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췬지/끄슬린 돌 두어 개 시름겹다.” 노인이 떠난 강가에는 돌을 세워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솥단지를 걸어 밥을 지었던 흔적이 있다. 어느 나그네가 지나갔던 자취다. 이 길손의 취사는 기능으로만 본다면 오늘날의 등산객이 버너와 코펠로 밥을 짓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강가의 “끄슬린 돌 두어 개”가 그 시절 한 가정의 부엌을 간소한 형식으로 다시 조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엌은 가정의 중심으로 조왕신이 깃든 곳이다. 나그네는 혼자 몸으로 집을 이루고, 살 길을 찾아 그 집을 끌고 간다. 아마 노인도 감옥이 있다는 청진까지 아들을 찾으려 그렇게 밥을 지으며 갈 것이고, 청진에서 아들과 함께 그렇게 집을 짓고 허물며 돌아올 것이다. ‘강가’라는 제목은 무심하다. “시름겹다”는 말로 끝은 맺었지만, 어찌 이 시름을 다 말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무심하다. 한 시대에 이 민족이 유랑하며 겪었던 고뇌가 이 무심함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는 ‘살인자의 술’이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담은 끔찍한 시가 들어 있다. 어느 술꾼이 잔소리하는 아내를 우물 속에 밀어 넣어 살해한 뒤 또다시 술집에 앉아, 아내에게서 풀려난 해방감과 아내를 죽인 자의 절망감을 동시에 읊고 있는 시이다. 그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죽였다고 말하는데, 이 변명은 좀 평범하게 들린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늘 범죄와 자살의 유혹, 극심한 불안, 억압과 해방에 대한 갈증이 따라다닌다는 뜻의 말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범죄를 극적인 서사로 꾸민다. 벌써 150년이 지난 프랑스의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한국의 신문에서 아내나 애인을 죽인 남자들의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보들레르의 살인자와 한국의 살인자들은 물론 다르다. 저쪽 나라 살인자는 여자에게서 해방되기 위해서 살인을 했지만, 지금 이 땅의 살인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에게서 떠났거나 떠나가려는 여자들을 살해한다. 억압과 해방의 주체가 역전되어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살해된 여자들은 말할 수 있는 입이 없지만 남자 살인자들은 사랑의 서사건 증오의 서사건 자신의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사는 어느 나라 어느 남자를 막론하고 늘 똑같다. 남자에게 여자는 그가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회의 얼굴이다. 어렸을 때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어머니가 대신해서 전달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아내가 대신해서 요구한다. 남자를 붙잡고 잔소리하는 여자나 거꾸로 남자에게서 해방되려는 여자나 본질적으로 그 요구 사항은 같다. 남자는 저 ‘명령하는 사회’를 자기 힘으로 파괴할 수는 없지만 여자는 만만해서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살해된 여자에게 자기 서사를 만들 수 있는 입이 있다면 그 서사는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회의 요구를 전하기 전에 사회는 먼저 여자에게 명령한다. 가부장 사회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부터 다른 일까지 삶의 실제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는 사회의 막중한 명령을 자신의 어깨로 느낀다. 게다가 명령을 전달하는 여자는 남자를 달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어떤 마술로 저 명령을 말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여자에게 그런 마술은 없다. 여자는 살해당함으로 마지막 마술을 베푼다.

    이 글을 읽는 남자들은 자기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가부장사회에서 착한 남자건 나쁜 남자건 남자의 서사는 같다. 남자의 서사는 못난 살인자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웅의 서사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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