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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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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산다 (11) 아프니까 ‘핀셋힐링’ 한다

  • 기사입력 : 2017-07-31 18: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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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무심히도 흐르고, 나날이 정신 없이 바쁘고, 그러다보니 여유가 없어 아프고 힘든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나간 ‘연애 실패’를 곱씹어 보고, 성공적인 다음 연애를 위한 전략도 짜고 싶다. 한번에 2주 정도 충분한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다면 ‘나는 자연인이다’ 속 주인공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훌쩍 산속으로 떠나 칡과 더덕을 캐며, 또 술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싶다. 그건 30년 뒤로 미루기로 한다. 대관절 추석 연휴는 언제 오는 것인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리가 뻐근하다. 내 온몸은 지금 간절히 힐링을 원하지만, 현실은 월화수목금금금이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핀셋 힐링’이다. 넉넉하게 여유부리면서 쉴 수 없으니 바쁜 일상에서 짧고 굵게, 딱 필요하게, 재충전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법을 나름 찾았다. 혼자 할 수 있어서 좋은 건 기본이다.

    서른 한 살, 갓 3년차 솔로 직장인인 나는 아프니까, 이렇게 힐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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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프탑카페에 가서 셀카도 찍고, 노래도 듣고

    ▲양말, 이모티콘, 꽃

    시발비용이라고 들어봤는지? 앞 두 음절의 절묘한 리듬에 비용이란 단어가 붙은 이 신조어는,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돈’을 뜻하는 의미다. 즉 깊은 ‘빡침’을, 소소한 지출로 푼다는 의미다.

    매일 마시는 술이 시발비용적인 성격을 갖고 있겠지만 좋아서 마시는 거니 제외하기로 하고, 내 시발비용은 양말, 이모티콘, 꽃을 사는거다. 양말은 요즘 라코스X에 꽂혔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는 산 대신 아울렛으로 떠난다. 가서 양말 한아름을 손에 쥐며 스트레스를 내려놓는다. 이모티콘은 ‘적극적인 곰’ 시리즈를 최애(최고로 애정)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마다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편인데, 지난 달 폰요금이 12만원 나왔다. 이 녀석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는데 3만3000원을 썼더라. 하나에 2200원이니, 15번의 소소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의미다. 양말과 곰돌이 이모티콘으로도 안 되는 ‘딥빡’ 날에는 꽃집으로 간다. 드라이플라워 한 묶음을 손에 잡노라면 입안에 맴돌던 욕이 저절로 쏙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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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드러누워 노래도 듣고

    ▲동네 카페 발굴하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건·사고 기사를 터지는 순간 즉각 써내고, 기획성 기사 아이템을 발제하고, 업무시간 외 돌발노동도 때때로 한다. 월 7만원의 포괄임금으로 초과근무도 불사한다. 잘하고 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늘 고생하는 사회부 만세!)

    노트북을 켜는 곳이 곧 일터. 와이파이 빵빵하게 잘 터지고, 등짝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카페는 사회부 기자의 안식처다. 여기에 노곤한 몸과 지친 마음을 달래는 건 기본, 앉아서 셀카 한 장 찍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동네 카페는 창원에 꽤 많다. 예쁜 동네 카페 창가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페퍼톤스, 브로콜리너마저, 검정치마, 정준일의 노래를 듣고, 3시간쯤 멍을 때리면 몸 안에 가득 찬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다.

    2년여 직장 생활을 하며 현재 출입처인 마산, 집 인근인 창원 신월동, 사림동, 봉림동, 고향인 밀양에 언제 가도 조용하고, 커피 맛이 일품인 카페 8곳을 나 혼자 지정했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산 대신 카페로 떠난다. 어딘지 궁금하면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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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집에 갈 땐 갤러리카페로 가서 하루종일 멍을 때리고,

    ▲두피스케일링 받기

    스트레스는 탈모의 주범이라던가. 아직은 안심해도 무방하지만, 언제 어느 타이밍에 내 두피에서 머릿카락이 대거 탈락할 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다. (아, 빠져도 결혼하고 빠져야 할 텐데.) 불행히도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 생존해 계신 작은아버지 모두 앞 이마가 유난히 넓으셨거나 현재 넓고, 정수리는 빛이 났거나 빛이 난다. 진짜 친한 친구들한테도 안 보여줬지만 내 이마도 유난히 넓다.

    스트레스를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직업을 택했으니, 탈모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두피 관리를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는 날엔 곧장 미용실로 직행해 두피스케일링을 받는다. 모공에 쌓인 각질을 정기적으로 제거해 탈모를 예방하는 건 기본, 두피스케일링에 이어지는 두피마사지에 그간 쌓인 내 몸안의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간다. 남자들이여, 두피스케일링을 받으시라! 컷트 비용에 5000원만 더 추가하면 된다. 치아스케일링은 저리 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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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라인을 넘는 스트레스엔 눈썹 왁싱!

    ▲눈썹 왁싱

    이발은 머리만 하는 게 아니다. 눈썹도 한다.(다른 곳은 이번 생에는 자신이 없다.) 거울을 볼 때마다 삐죽삐죽 제각각인 눈썹 길이, 일정치 않은 눈썹 모양을 바꾸고자 왁싱을 하러 갔다. 뜨겁고 끈끈한 액체를 눈썹 주위로 칠하더니, 글쎄 자비도 없이 청테이프 같은 걸로 털을 한 방에 쫙 떼버린다. 그 때 그 순간의 짜릿함은 신세계였다. 그간의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버렸다. 지갑에서는 2만8000원이 나갔다.

    ▲뭐니뭐니 해도 술이 최고의 보약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도 휴가를 썼지만 북한의 ICBM급 도발로 맘 편하게 휴가를 못 보내고 있는 와중에 이 땅의 누가 맘 편하게 연차 휴가를 다 지를 수 있겠는가. 아 추석 연휴는 언제 오는 것인가. 커피, 두피스케일링, 눈썹 왁싱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에는 뭐니뭐니에도 족발에 쏘맥, 모듬회에 쏘맥, 오리탕에 쏘맥, 갈비찜에 쏘맥, 돼지국밥에 쏘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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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물에 발 담그고 마시는 맥주의 맛은 세상 최고! 스트레스도 훠이~ 훠이~

    스트레스와 깊은 빡침을 넘어 회의감과 아픔이 최고조로 달했던 7월의 어느 날 꽃, 이모티콘, 양말, 카페, 미용실, 왁싱샵도 성에 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계곡으로 떠났다. 계곡물에 담궈놓은 맥주를 꺼내마시며, 셀카를 찍으며,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를 들으며, 나는 힐링을 하고 왔다. 효과는 좋았다.

    그런데 아, 내일은 월요일이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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