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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권리에 대해

책 읽어주는 홍아 (3)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 (정희재)

  • 기사입력 : 2017-08-07 15: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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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지금 뭐하지?' 조금이라도 비는 시간이 생길 때 드는 첫 생각이다. 무언가 할 게 정해지면 '그럼 어떻게 빨리하지?' 순서로 '할 것'의 알고리즘은 시작된다.

    이런 알고리즘은 나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증상은 지금보다 더 심했다. 뭐하지 질문에서 대부분 첫 답이 '자전거나 타자'였고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같은 자전거 도로 코스를 달렸다. 나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자전거 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자전거가 좋아서 취미가 됐는지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자전거를 타다가 취미가 됐는지 선후관계는 불명확하다. 그렇게 일주일에 80㎞. 자전거에 거리계가 있다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의 1년 주행거리와 엇비슷할 수도 있겠다. 빈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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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은 책은 이런 나에게 '멈춰라'고 일침을 놨다. 이 책은 제목만 봐도 효과가 나타났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알기위해서는 책을 읽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역설 때문에 안 읽어졌다. 게다가 읽는 속도도 느렸다. 또 아무 것도 안 하려는 마음이 커져 이 글도 쓰기가 어려워졌다. 다른 독자는 이 책을 사무실 본인 책상에 올려놓으면 상사에게 무언의 압박을 줄 수 있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매우 솔직한 책이었다. 책 내용 중에는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라는 부분이 있다. 좋은 고전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책을 중간부터 혹은 찔끔 읽어도 된다고 강조한다. 다행히 책은 이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했다. 이 책은 마음 갈 때 중간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된다. 펼친 부분만 읽고 덮어도 된다. 그래도 책이 주는 메시지는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메시지는 무겁지 않다. 쉽게 실천해 볼 법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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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책에는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차를 보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해 볼 권리', '꿈꿀 권리', '딴지를 걸 권리', '실수할 권리' 등이 차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책 제목에는 생략된 말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 결국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인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안을 해 놨다. 특히 책이 제안하는 '심심하기, 게으르게 산책하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가르쳐 주는 방법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머리에서 코끼리 생각을 지워야하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 생각을 하지말자고 생각하면 코끼리는 더 크게 자리 잡는다. 코끼리 대신 기린, 사자, 호랑이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코끼리 생각은 지워진다. 행동도 똑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면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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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 공주시 마을 뒷산에 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난 봄 공주에 짧은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공주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안 해봤다. 맛집을 검색하지 않았고 가지도 않았다. 심지어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을 알고 있는 무령왕릉에도 안 갔다. 대신 동네 허름한 밥집에서 맛있는 백반 한 그릇을 먹고 누워 있다가 마을 뒷동산에 올라 산책하고 꽃과 하늘 사진을 찍고 구경했다. 나의 기본 알고리즘을 거부한 행보라 마음 한구석에는 자꾸만 에러 메시지가 떴지만 애써 외면했다. 쉽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노력 끝에 난 이 여행에서 휴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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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철이다. 곧 휴가증후군 관련 기사가 담당 기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많은 언론에서 쓰여질 것이다. 휴가증후군이란 말은 모순이다. 휴가(休暇)는 다녀왔지만 한가한(暇) 쉼(休)은 없었다는 말이 된다.
    화려한 휴가 사진, 여름 노래들은 우리도 그들과 같이 휴가증후군이 도사리고 있는 휴가를 보내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휴가 과정의 험난함이 쏙 빠져있다. 그 곳은 대부분 교통난, 주차난, 숙박난 등이 난무하는 전쟁터다. 여기에 가족이나 연인의 짜증까지 더해지면 지옥을 방불케한다. 유명한 여름 노래 '여행을 떠나요'에도 험난함이 숨어 있다.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떠나자고 한다. 아침엔 좀 자자. 또 휴가를 다 떠난 텅빈 도시엔 더이상 소음이 없다. 대신 휴가지에는 사람 숲이 울창하다.


    난 올해도 이런 여름 휴가는 가지 않을 계획이다. 책에서 말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이 책과 함께 이번 휴가 때부터 한 번 누려보길 조심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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