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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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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6) 아라가야(阿羅伽倻)

1500년 전 꽃피었던 문화, 다시 꽃필 날 기다린다

  • 기사입력 : 2017-08-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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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백제와 맞선 큰 세력

    함안군 가야읍은 6가야 가운데 비교적 세력이 컸던 옛 아라가야(阿羅伽倻)의 고도(古都)다. 해발 50m 안팎의 도항리와 말산리, 신음리, 가야리 등에 부챗살처럼 퍼져있는 말이산 구릉은 이 고장의 진산(鎭山)인 여항산(艅航山)으로 모아지며 까마득한 옛 가야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말이산은 남북으로 길게 2㎞ 정도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세 가닥 능선에는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큰 고분이 정상부를 따라 나란히 배치, 500년 아라가야의 실체를 추정케 하는 유일한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1세기경 6가야 형성기에 함안지방을 중심으로 건국된 아라가야는 6세기 중엽 신라에 복속되기까지 안으로는 창원 의령 진주의 일부지역을 영역으로 할 만큼 강건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밖으로는 여러 나라와 세력경쟁을 하며 한반도 남부의 발전을 주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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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515호로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고분군.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인정받아 함안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아라가야는 자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新羅本紀)’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극히 부분적으로 기록, 역사를 복원할 길을 잃어 버렸다. 또한 가야가 6세기까지 신라 백제 등과 대등한 입장에서 성장을 계속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신라 백제 그리고 왜국(倭國)의 역사와 관련되는 부분만이 다뤄져 마치 삼국(三國)에 부수하는 역사로 취급돼 왔다.

    역사상 함안과 관련된 지명으로는 안야(安耶) 아라(阿羅) 아시랑국(阿尸良國) 안라인(安羅人)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아라가야의 옛 지명이거나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함안은 변진안야국으로 대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기 1세기가 되면서 이 지역도 차츰 세력의 통합이 이뤄져 마침내는 6가야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함안은 바로 이 6가야 중의 하나인 아라가야이다.

    ▲수로왕의 바로 아래 동생인 아로왕이 시조

    가락국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6가야의 왕은 모두 금합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姓)을 김(金)씨로 하고 각기 도읍한 땅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따라서 아라가야의 시조는 수로왕의 바로 아래 동생인 아로왕(阿露王)이다. 그러나 아로왕이 백제계 비류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가야는 주변의 강대세력인 신라와 백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신라는 법흥왕대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와 불교의 수용, 경제적인 부를 바탕으로 진흥왕대까지 주변의 여러 나라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게 된다. 신라의 가야제국(伽倻諸國) 병합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김해의 가락국이 신라로 병합되면서 함안의 아라가야도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신라에 멸망하고 만다. 이때가 서기 560년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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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굽다리등잔.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데 사용했던 조명용 토기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등잔 중 가장 많은 7개의 등잔이 달려있다.



    ▲한국 최초 완벽한 상태의 말 갑옷 출토

    옛 아라가야 땅인 함안군과 도읍지로 알려진 가야읍에는 500년 역사를 증명할 유적이 거의 없다. 함안이 아라가야의 중심지라는 추론은 고분의 발굴이나 집중적인 지표조사를 통해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고 가야읍 일대 말이산고분군 등의 대형 봉토분의 분포상태를 가지고 간단히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적 제515호로 지정된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찬란했던 아라가야 500년의 고분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베일 속의 아라가야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영남지역의 주요 가야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본격화되면서부터다. 특히 말이산고분군의 암각화고분과 한국 최초로 완벽한 상태의 말 갑옷이 출토된 마갑총에 대한 발굴조사는 온 국민의 관심을 옛 아라가야 땅인 함안으로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중 8호분은 말이산고분군의 대표적인 대형고분으로서 5세기 후반 아라가야 왕묘로 추정되는데 여기에서 순금제의 둥근고리큰칼을 비롯해 3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또한 무덤 한쪽에서는 순장된 사람의 인골들이 발굴되어 1500여년 전 아라가야인의 모습과 매장풍습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특히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토기를 비롯해 수레바퀴모양토기, 굽다리등잔, 새모양장식미늘쇠 등의 뛰어난 유물들은 아라가야가 삼국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고대국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 외 함안에는 군북면의 삼봉산(三峰山)과 대산면 대사리의 안곡산(安谷山)에는 가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실체를 유추할 수 있는 유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발굴조사를 한답시고 부장품들을 대부분 파갔거나 훼손해 가야역사를 의도적으로 파괴해 버린 일은 두고두고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되고 있다.

    ▲말이산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준비 중

    함안군은 수년 전부터 아라가야 고분군을 정비 복원하고 가야문화를 널리 알려 후세들에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분군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말이산 기슭에 박물관을 건립, 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말이산고분군은 박물관이나 함안군청 뒷길 등 어디서나 오를 수 있다. 낮은 구릉 위에 조성된 고분들은 산 위의 산처럼 우뚝 솟아 가야읍을 비롯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잘 조성된 고분 사잇길로 말이산을 한바퀴 도는 데 족히 한 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유역이 넓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옛 가야 역사의 향기를 맡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500년 아라가야 역사가 지금은 문이 굳게 닫혀 있으나 함안에는 가끔씩 가야시대 토기조각 등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아라가야의 실체를 밝혀줄 실마리가 잡힐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말이산고분군은 지난 2013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유산회의에서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따라서 2015년 3월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김해와 고령의 가야고분과 함께 ‘세계유산 우선 등재대상’으로 선정돼 2018년 최종 등재 신청을 준비 중에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말이산고분군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유산으로 우뚝 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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